통일컬럼 및 논단

동독 시각에서 본 한반도통일

박상봉 박사 2005. 10. 7. 22:17
 

동독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 통일  

(註: 평양주재 동독 마지막 대사 한스 마레츠키 박사가 지난 1997년 한국을 방문해 발표한 논문을 번역한 것임)


독일과 한국은 국가발전과정에 있어서 상호 유사한 점이 있어 문제해결의 과정에서 상호 보완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두 국가 모두 전쟁을 치른 후 분단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 결과 한개의 땅에 두개의 상이한 체제가 만들어져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분단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가 ? 통일 후 두개의 서로 다른 체제가 어떻게 통합관리 되어져야 할 것인가 ? 에 두나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통일된 독일과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준비하고 있는 한국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독일의 경우 통일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통일 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런 통일로 양분된 채 정리되지 않은 국민의식, 동독체제의 책임자 처리 문제, 서독 정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던 통일과정에 대한 장․단점, 통일된 한 국가 내에서 동 서독 지역간 완전한 통합을 이루기 까지의 과제들. 그리고 통합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많은 불평불만들이 기대치 이상으로 통합과정의 어려움들 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그대로 한국상황에서도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문제들은 한반도 통일에도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 여러가지 특수한, 분단으로 야기된 문제들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관련된 문제

- 올바른 통일정책을 찾아내 효과적인 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한 정치인들의 갈등

- 피해를 극소화하고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국가적 사명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에도 독일과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비슷한 과정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애국적 감정, 장기간의 냉전 상황 속에서 형성된 정치적 편견 그리고 다양한 현실적 해결책들이 상호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역사적이고 정치적 관점에서 독일 통일이 한국의 모범사례일 수는 없으나 다가올 남북한 통일은 기본적으로 독일과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한국사회는 통일을 준비하고 통합의 과정에 대해 미리 심사숙고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해를 통한 통일이라고 하는 바람은 다분히 학술적이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통일은 북한 내 상황과 정치적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형태는 북한이 남한체제로 편입하는 과정을 밟을 것이며 그외 다른 방안이 고려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예정된 과정을 보다 합리적이고 비교적 편견없이 이끌기 위한 방법과 수단들이 강구될 수는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독일통일의 경험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앞서 양국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유사한 단면을 조명해보기로 하자.


I. 분단국의 부담


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동일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고 결정적으로 외부세력에 의해 확정되었다. 분단의 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은 냉전의 대립 속에서 각각 강대국의 첨병 노릇을 해왔다. 한측은 소련의 지배 하에 있었고, 다른 한측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강대국들은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며 소위 보호자의 모습으로 피보호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 나타나곤 하였다. 이와 같은 역사적 관점 속에서 분단의 근원을 파헤치면 이들 나라에 있어서 통일은 과거 외부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진 역사의 한 단면을 바로 잡는 일인 것이다. 즉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한 민족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것임과 동시에 과거에 외부세력에 의해서 강요된 사건을 본래 모습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작업이다.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독이나 북한은 공산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적 구조가 재정립되었고 막강한 소련의 관할지역 최전선에 위치한 인질국가에 불과했다. 이들 인질국가들은 전략적 요충지에 걸맞게 소련 체제의 대변자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사회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지난 사건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내린다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당시 통치자 소련의 모습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동독도 통일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제 동독사람들은 어두운 과거로 부터 탈출하려 하고 있다. 가능한 한 서독과 동등한 권리를 갖추고 통일과정에 동참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독인의 이러한 시도는 많은 부분에서 그들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독인들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서독인들에 비해 약점 투성이이며 정치적으로도 열세에 놓여있다.

통일 후 독일에는 동독 출신들을 이등국민으로 만드는 작업들이 여러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 정책적으로 동독인들은 불리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당국의 정책 집행과정에서도 동독인들은 손해를 보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정신적 통합작업 속에서도 동독인들은 열등한 계층이라는 의식을 저버릴수가 없다고 나 자신은 판단한다.


원칙적으로 한 민족의 통합은 한 체제가 없어져야만 가능하다. 하나의 연방체제 하에 두개의 대립된 체제가 공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일통일은 동독이 서독의 국가체제에 편입됨으로 실현되었으며 이와 같은 민족적 재통일은 서독인들 뿐 아니라 동독사람들도 승리자로 만들었다. 물론 동독의 해체작업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통일 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사유화 작업과 재산권의 정리작업이 완결되지 않았으며 동독과거에 대한 법적, 정치적 처리작업도 아직도 완결되지 않았다. 또한 통일 후 실업자가 증가하는 등 사회 경제적 문제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즉 통일작업의 핵심은 대립되어 왔던 두 체제를 어떻게 무리없이 하나로 묶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두 개의 대립체제를 축소하여 거론하는 사람은 아마도 감상적 민족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 정부의 몇몇 지도자들이 그 부류에 속하고 있다. 그들은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과 화해, 협조를 통하여 점차적인 민족 공동체의 의미를 재창조하여 한민족 한국가를 완성" 한다는 통일의지를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의 안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남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국가발전 계획을 추구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단순한 민족 분단의 경우에만 실현 가능성이 있다. 독일이나 한국과 같이 분단의 성격이 체제대립적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분단의 해결은 하나의 체제가 와해되고 다른 체제가 민족 전체로 확대됨으로서만 가능하다. 더욱이 남한국민들이 북한의 독재권력의 안정을 진심으로 원하는 지 여부도 의심스럽다.


소련의 체제를 모델로 창조된 국가들과 그 정치적 질서는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서만 유지될 뿐 아니라 체제 간 극단적인 대립감정을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고 민족의 반역자인 서울의 꼭두각시들을 선동적으로 몰아부침으로 투쟁의식을 고취시켜 그 체제를 유지시켜가고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경쟁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 60년대 무려 20여년 동안 동독정부는 서방 측과 분리된 고립정책을 추구하며 외부세계와의 경쟁을 스스로 회피해왔다. 그러나 동독정부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고립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동독사회를 떠나왔으며 설사 고립정책을 쓴다해도 서방세계로 부터 흘러드는 다양한 정보와 번영된 사회의 소식들을 차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체제유지는 이러한 철저한 통제에 기인하지만 현실적으로 남한측이 스스로 대북한 국경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체제유지에 잘 이용하고 있었다.) 

고립정책은 한계에 다다랐고 동독은 조심스럽게 서방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개방정책과 서방 세계와의 관계 정상화가 조심스럽게 실험되었으나 결국 이 실험은 동독을 붕괴시키고 만 것이다. 그 당시 동독의 지도자들은 국민과 외부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하던 북한을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다른 한편 북한은 그와 같은 동독의 개방실험을 파멸에 이르는 곡예사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독일과 한국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것은 장기간의 분단상황 속에서 형성되어 고착화된 것들은 하루 아침에 바뀌기가 쉽지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는 1950년의 남북간 전쟁의 후유증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로 하나된 통일은 정치적, 제도적, 법적 통합을 초월하는 더 깊고 힘든 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의 통일경험이 또한 이를 증거하고 있다. 동독이 서독 연방체제로의 편입되는 통일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전환의 과정이며 적지않은 비용이 요구되고 있다.

오랜 분단상황 동안 사회주의 실험을 거쳐 형성된 독재체제를 역사 속에서 그저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이 쓸모없는 체제를 정비하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작업은 그에 걸맞는 희생이 따라야 하며 적지않은 재정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난 반세기 이상 잘못 쫓았던 사회, 경제적 삶의 의미와 정치적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현재 상황 하에서 북한 내 체제변화는 내부적 상황전개에 달려있으며 외부적 요인에 의해 쉽게 조정되지 않을 것이다. 남한 정부는 북한 내에 반체제 폭동의 징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지난 1989년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을 즈음하여 전문가에 의해 예측된 것들 중 바로 눈 앞에 닥쳐있던 동독체제의 종말이 들어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북한체제는 그 특성상 국민대중의 결집된 힘에 의해서 변화될 수 밖에 없으며 그 힘은 어느 한순간 폭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내에는 조직된 반대세력이 존재하고 있지않기 때문이다. 폭발은 식량 부족과 피폐한 경제, 억압으로 신음하는 현장으로 부터 일어날 것이며 당과 군 조직 그리고 주체사상의 입발림을 동원하여 폭발의 순간을 막고있다.

북한이 위로 부터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의미하다. 남한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그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으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의 변화는 체제붕괴를 염려하는 공산 혁명주의자들에 대한 국민의 반혁명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소련의 지배동안 북한의 민족 자결권은 말살되고 말았다. 인민 민주주의라는 명분 하에 북한이나 동독은 소련의 체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북한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동독은 '반파쇼 민주주의' 라는 국호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간헐적이긴 하지만 1945년 부터 1950년 사이에 동유럽과 북한에서 일어났던 체제전환의 성격은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소련 체제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핵심권력들은 특수한 형태의 독재체제 (스탈린식 독재)를 도입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고 그 당시까지 동독이나 북한국민들에게 경험적으로 전혀 생소한 체제를 도입시키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혁명이라는 명분 하에서 모든 본질적인 것들이 바뀌어 갔다. 재산제도와 정치적 규범들은 물론이고 모든 본질과 진리, 인간의 상상력까지도 전도되어 갔다. 주체사상은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태동되었고 반세기이상을 버텨나가고 있다. 이렇듯 와전된 것들이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통일을 이루어낸 독일의 경험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재산권 문제이다.

동독에서는 소위 '인민 민주주의 혁명' 이라는 구호와 더불어 동독 내 많은 개인재산들이 철저하게 몰수 수용되었다. 산업체, 중․대지주의 땅 및 고급주택들이 몰수되었다. 수 십 년에 걸쳐 개인소유의 재산들이 국가나 협동체 소유로 이전되었다. 동서독 통일로 인해 이렇게 몰수된 재산들이 새롭게 정리되었다. 몰수된 재산 중 일부는 원소유주에게 반환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사유화 과정을 거쳐 원소유주에게 보다 유리하게 환원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한 정직하지 못한 재산권 반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통일 후 추진되고 있는 동독의 재건 및 처리과정에는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한 소련에 대한 처리가 생략되고 있다. 전후 동독사회를 파괴하고 예속화한 소련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동독 체제 기간 중 일어난 각종 문제점에 대한 처리작업에만 치중하고 있다. 상대방 핵심 엘리트 세력들에 대한 처리도 역사적 사항들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한다. 1945년 전후 동독과 북한의 소련화 작업에 대한 지지자들이 극소수 였다. 그러나 소련은 급격히 사회주의 혁명에 동조하고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지칭하는 세력들을 확보하는 데 탁월한 능력과 기질을 발휘하였다. 북한의 경우, 소련 군간부들은 아주 실용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여 한반도 내 일부 존재하고 있던 공산세력들이 아니라 만주에서 반일투쟁에 앞장 섰던 민족주의자들을 지도자로 택하였다. 이들은 지난 1940년 일제에 쫓겨 소련으로 철수했던 인물들이며 소련 군간부들로 부터 군사교육과 지하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소련 식 사고와 행동도 주입되어 후일 일반국민들에게 홍보토록 하였다.


동독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소련군은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피해 모스크바로 망명한 동독 공산주의자들을 데리고 와서 동독 내 사회주의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친소련 지도세력으로 만들어 정치적 핵을 이루도록 하였다.

북한을 친정체제로 만들기 위해 소련은 당시 소련군 장교였던 33세의 김일성을 선택해 북한에 공산당을 만들고 행정부처를 설립하도록 하였다. 이렇듯 소련 자문단의 힘을 기초로 김일성은 3년 만에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1948년 9월 '조선민주 인민공화국' 을 일으켰다. 김일성은 점령세력으로 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북한을 다스리기 시작하였으며 차후에는 공산주의 권력구조를 갖춘 자주적이고 민족적인 국가로 갖추어 갔다.

스탈린과 모택동이 영향력을 상실한 후, 김일성은 그들의 역할과 통치철학을 북한식으로 위장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이래 북한에는 아무도 주체사상의 원뿌리에 대해서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김일성은 신화와 전설로 미화된 채, 국가를 유지하고 일본세력을 물리친 장군이었고 인민들에게는 세계 유일무이의 주체국가를 선사한 민족의 영웅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바탕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김일성은 바로 이런 식으로 천국의 기초를 세웠고 그 기초 위에 한국형 사회주의를 건설한 것이다.

북한 사회와 세계관의 기초가 되는 종교철학이라는 '주체' 개념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편입시킨것에서 부터 북한의 생존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스탈린 독재체제를 한국적으로 미화하여 북한 내 특수한 사회주의 체제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것은 사회주의 개혁을 추구했던 다른 체제 보다 더 강력한 생존력을 배양시켰다. 동독의 경우는 개혁을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당이 스스로 스탈린 체제를 거부하였고 서구로 부터 몰려오는 물결에 적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배양토록 하였으나 이것으로 동독이 생존할 수는 없었다.

북한은 김일성의 교시 하에 모든 스탈린의 통치철학이 주체사상 속으로 녹아들어 갔으며 한국적 유교 사상이 이러한 북한화 작업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만약에 주체사상이 북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선포되었더라면 이것은 아마도 모든 문제에 대한 자율과 독자성의 원칙에 불과하였을 뿐 그 자체가 인간의 모든 정신과 활동세계의 규범을 제시하는 완전한 세계관으로 인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소련이 동독과 북한을 소련 식 체제로 밀어부칠 당시에는 이에 대항하는 뚜렷한 저항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주민들 중 일부가 이를 거부하는 정도였다. 다만 전후 혼란의 와중에서 공산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공산주의를 인민 민주주의로 위장하여 혼란된 사회를 장악하기가 더욱 용이하였던 것이다.

통일이 현실적으로 진행된다면 통일문제는 더이상 체제 편입의 과정이나 규칙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북한인이나 동독인들의 과거 행적이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 동서독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일은 패망한 동독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과거로 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것인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또한 승자의 위치에서도 무엇보다도 오랜 체제간 투쟁의 깊은 골에서 빠져나와 정치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승자의 위치에서 통일 이후 기존의 사고를 전환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통일은 과거의 잘못을 판단하고 그 책임자들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청산과 처리문제는 관용을 갖고 보다 합리적으로 처리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서독인들은 통일의 풍요 속에서 그 혜택과 사회적 처벌이 동독의 지도자들이나 그 체제에 반항하며 살아왔던 모든 동독인들에게 아무런 차별이 없이 일괄 적용된 것에 의아해 하고 있다.

동독의 과거 청산 작업은 공평하게 처리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수 십 년간 대립된 체제 속에서 형성된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자의 입장에서 지나치게 이윤을 추구하려는 모습과 그에 대한 자기 정당화가 가세되어 공평한 처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통일 후 정신적 황폐함은 통일 전 '주일 설교'에서 듣던 그런 미화된 상황과 많은 괴리가 있으며 통일을 이끌었던 정치지도자들이 매기는 평가와도 상충된다. 바로 이점에 화해를 주장하는 남한 내 정치가나 학자들에게 던져지는 시사점이 놓여있다. 여기서 화해는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에 가교를 놓아 북한식 사회주의를 체제와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는 체제와의 환상적인 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화해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는 통일이 이루어진 후 양측간에 제기되는 문제를 조화롭게 풀어나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II. 북한상황의 특수성과 한반도 통일의 문제성


북한의 정권은 하나의 정치적 현상이다. 이렇듯 완전한 전체주의적 권력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다른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모든 주체적 창조물, 즉 태안시 경제지도 방식과 같은 통제경영의 고전적 모델이 김정일에 의해서 만들어진 후 수 십년을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태안 시에 소재한 전기설비공장에서 최초로 정부계획안에 대한 집행절차가 통제경제 관리 모델 하에서 실시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는 이미 십여년 단위로 변화가 일어나, 전체주의에서 반전체주의, 권위적-개혁사회주의 라든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와 같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즐겨 다루던 테마는 '대영도자의 철학' 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수년동안 노동당이 출판한 각종 홍보자료의 제 1주제는 체제의 우월성에 관한 것으로, 개혁을 통하여 몰락했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체제를 고수하는 국가는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주체적 전통은 불변하다. 김일성은 그의 경제원칙을 열심히 지도하였으며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지도자를 통한 '현장훈시'를 강화하였다. (마찬가지로 절대주의 시대의 유럽 왕권들은 개인적으로 새로 도입된 과실재배 라든가 낙후한 지역의 토지개량 작업을 스스로 감시 관리하였다)


지속되는 절대적 중앙집권화와 경제의 명령통제화는 스스로 몰락했으며 그 사이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도 금수산 궁전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아들 김정일은 절대적인 김일성 지도노선을 유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지도체제의 특징은 이미 프로그램밍 되어 추후의 어떤 지도자도 변경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는데 있다. 정치 뿐 아니라 경제에도 군사 통치 시스템이 도입되어 명령체제가 만들어졌으며 당과 지도자가 결정한 사항은 절대권위를 갖게 되었다. 공포와 강요는 이 과정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된 수단 들이었다.

바로 이러한 북한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반세기 이상 분단된 남북관계가 민족적 동질성을 매체로 정상화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북한의 폐쇄성은 동독과 비교해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며 이것이 또한 남북한이 화해를 통해 접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남북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이웃이라는 관계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이웃관계는 상호 아무런 접촉과 관계가 없는 정체된 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상호간 체제 비방을 자제하고 구체적인 안건을 매개로 접촉할 수 있다면 양국관계는 보다 평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체제가 화해를 통해 하나로 통합된다는 발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지난 1994년 8월 남한의 한 고위 정치가는 "북한 지도부가 안정 속에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할 것을 희망한다" 고 전한 바있다.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이 김일성 사후 체제를 재정비하려 한다면 반드시 개혁할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1994년은 이러한 낙관주의자들의 한해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갔다. 당시 남한 내 전문가들 사이에는 과연 무엇이 주체사상 하의 북한권력을 와해시키도록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제기되었어야 했다.

평양정권은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주창할 시점에 이미 그러한 개혁조치로 사회주의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회주의 동맹국들은 다양한 변화을 시도하다 체제의 종말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확인한 후 북한의 지도부는 혹 있었을 수도 있을 시장경제 및 다원주의 체제에 대한 의욕을 떨쳐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북한인민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는 데 집중되었고 맹목적 보수편향적 사고만이 남게되었다.


북한의 타협없는 체제고수 전략에는 국가와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사안에 당(조선노동당)이 절대적 지위를 갖는다는 당대의 볼쉐비키적 테제 만이 유효하다. 마치 완전 자율적이고 격리된 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는 경제,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재산을 배제하고 있는 경제의 중앙관리와 같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주체집단적 행동유형으로 기르기위한 교리서도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이며 국가 스스로 아이디어, 정보, 기술력 이나 사회적 삶의 질을 놓고 벌이는 외부와의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

수 년 전부터 남한 내 북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에 이미 변화의 조짐이 생겨나고 있으며 경제난으로 인한 개혁과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 희망에는 주체적 체제가 평화적으로 해체되고 북한의 연착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 부족으로 북한 주체세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주체사상은 세계관이자 통치철학으로서 유일무이한 사상체계이다. 변화는 이러한 유일무이한 철학에 대한 수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오늘날까지 위대한 영도자 김일성에 대한 이단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은 북한의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켜 나가라는 위대한 아버지 김일성 수령의 유훈을 갖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분신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는 권력기구의 최고위직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은 아직도 '위대한 영도자' 라는 이름 하에 통치되고 있다. 북한이 '개혁이냐 아니면 현 상태 유지냐' 하는 문제는 '권력상실 혹은 권력유지' 의 양자택일 사항일 뿐, 그 사이의 적당한 절충형에 대한 실험은 북한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일성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유일성, 불변성, 훈련과 같은 개념들을 그 통치철학에 접합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탈(脫) 스탈린과 탈(脫) 모택동주의의 결과들을 사려깊게 추적해 그 혼란의 과정을 정확히 찾아냈다. 그 결과 김일성은 북한의 변화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고 자신이 이루어낸 철통같은 권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사실은 그가 아버지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인물이라는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김정일이 아버지가 물려준 국가적, 이념적 유산들을 수정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남한 내 정치가, 교수, 언론인 중에는 북한 내 변화를 이야기하고 남북관계의 변화, 그리고 통일의 여정 속에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선의의 전문가들이 있다.

그러나 예상가능한 모든 가정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필자는 동독의 상황의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세가지 유형의 가정에 속하는 보다 현실적인 몇가지 가설을 단도직입적으로 전하기로 한다.


1. 남북한 화해통일론 (유럽에서는 '대화합' 으로 일컬어짐)

남북한 양국이 국가 공동체를 이루고 스스로 동화된 후 양체제의 장점들을 골라 통일을 이룬다는 방안이다. 낙관주의자들은 심지어 이 경우 득과 실에 대한 남북한의 공평한 분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신중론자들은 우세한 남한이 북한보다 더 많은 발언권을 부여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한 민족은 다른 민족에 비해 이해와 화합의 능력이 월등하다는 다분히 도덕성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2. 소위 『사랑받는 지도자』의 가정적(假定的) 개방론

만약에 김정일이 정권을 유지하려 한다면 현재 처한 경제난과 주민들의 불만을 어떻게든 해결해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북한은 개방되어야 하고, 김정일은 국제외교를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해외로 부터 투자와 기술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군사비를 감축하게 되고, 보수세력들은 지도층으로 부터 물러나게 될 것이고, 국가의 현대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유재산도 일정량 허용하게 될 뿐 아니라 시장경제적 요소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향상되고 지도자에 대한 감사가 생겨날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개혁을 이루어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정권의 정당성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또한 서방세계의 신뢰를 되찾게 될 것이라는 이론이다.


3. 우회전략론

유럽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 로 지칭되는 우회전략론이 당분간 남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될 것이다. 쌀 을 지원하고 경제적, 기술적, 재정적으로도 북한의 현대화를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북한의 붕괴를 막고 상호 교류를 확대하며 남북한 공동의 프로젝트를 설정해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한다. 이 방안의 목적은 안정, 개혁, 개방, 협조를 통한 발전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평화적으로 그 체제를 개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매우 박애주의적인 방안인 듯 하다.


위의 세가지 통일방안에 대한 가설들은 긍정적이고 선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현실적 상황으로 볼때 이 방안들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 북한의 주사파들은 화해라는 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들이며 남한의 정치체제가 아무리 박애를 운운한다 할지라도 지속적인 상호 교류 속에서 북한의 군부와 독재체제의 회복을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며 기적은 정치영역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70, 80년대 서독의 동방정책이라 불리었던 같은 제3의 길을 한국정부가 추구한다면 그 정책의 유효기간을 고려할 때 2020년도에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도 회의적이다. 즉 한국사회에서 주로 논의되는 위의 세가지 이론들 모두 북한의 철벽같은 현실적 상황들을 정확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의 국내여건은 국제외교적 노력을 통해서도 별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일본 그리고 서방국들과의 관계 개선은 북한 체제에 도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적대국 이미지를 약화시킴으로 해서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연합국가들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며 경제적으로 결정적인 지원을 해줄 나라는 남한이나 일본에 불과하다. 하지만 북한은 그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고있다. 남한에 대한 개방이요 일본의 막강한 힘에 대한 자신의 노출이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안고있는 더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산업과 사회간접시설들이 너무나도 낡고 열악하여 외부로 부터 수 십억 달러가 지원된다고 해도 전혀 개선될 수 없다는 현실이다. 농업경제와 수산업도 현재의 독재 권력구조 하에서는 회복될 수 없다. 생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재산제도와 가치구조를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


또한 북한이 상부로 부터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이루려면 우선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일성은 죽은 후에도 북한사회를 통치하고 있다. "왕은 죽었지만 왕은 영원하리라" 와 같은 프랑스 역사의 단면이 아직도 북한에는 적용되고 있다. 혹 다른 지도자가 등장할 수도 있지만 그는 김일성의 통치철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그 위치에 설 수 있을 뿐이다.

현재 북한의 주체세력은 체제유지, 이념보호, 정권방어와 같은 의미 속에서만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며 외부세계와의 단절은 하나의 절대원칙이며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남북간 화해와 상호 혼합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북한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부인한다. 외부세계의 변화의 물결이 감지되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변화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 북한 인민공화국은 전체주의 국가로서 당에 의해서 통치되어 왔다. 유일무이한 체제이자 집단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세뇌국가 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적인 철학 속에서 복종과 처벌 만이 유효하다. 국가는 권위적이고 지도자의 권력은 조건이 없으며 당의 독재구조는 엄격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시민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공권력은 무자비하게 집행되어진다. 비민주적이고 생활은 가난에 찌들려 있으며 소유와 가치기준이 없는 생산활동이 무의미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당지도자들은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을 수단으로 국민들의 저항을 말살하고 있으며 일반국민들은 사이비 교주의 지침에 따라 복종할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의식주 조차 제대로 해결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 대한 복종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도로 강요되고 있다.

북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적 파산이며 이로 부터 변화의 불씨가 당겨질 것이다. 기술적인 면이나 생산성, 에너지와 자원의 배분 모두가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모든 것의 원인은 사회주의 자체에 놓여 있으며 세계경제와 국제적 과학기술로 부터의 단절과 고립에 놓여있다.


- 마지막으로 북한은 군사국가이다. 군사 복합체와 군수경제가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치중되어 있다.


동유럽에 변화의 바람이 시작되었을 때 김정일은 1991년 5월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노동당에 다음과 같은 5가지 불변사항을 시달하였다.

1.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프로레타리아 독재의 지속 

2. 당을 매개로 한 지도체제의 유지와 노동당 조직의 복수구조 거부

3. 어떠한 형태의 사유생산 요소의 도입을 배제한 중앙계획 경제의 유지

4. 사회생활의 기본구조로서 집단주의 체제의 지속

5. 세대를 초월하여 위대한 영도자에 의한 당과 사회의 지도체제 고수


북한상황은 "사회주의의 개혁을 미루는 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 이라는 고르바쵸프의 주장에 대한 반대 가설과 같을 인상을 준다. 실제로 개혁을 시도했던 모든 곳이 무대에서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스탈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만은 존재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나 통일에 앞서 북한의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III.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관찰


동독이 붕괴하고 동유럽이 큰 변화를 겪고 있지만 평양의 지도노선은 변한 것이 없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대외정책에 몇가지 움직임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해도 미국과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어 북미 간의 긴장관계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내 두개의 국가' 전략과 맞아 떨어진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것은 긴장완화의 의미를 부여하지만 남한의 한반도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남북 간의 무역교류가 성장하고 있고 평양은 투자가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일련의 법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또한 나진 선봉지역을 자유 무역지대로 선포하는 등 경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조치들로 북한의 개방이 이루어지고 경협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할 수 없다.


북한은 기존의 모든 수단들을 동원하여 내부 변화의 조짐을 차단하고 있으며 지속되는 경제침체와 사회적 불안정을 일당독재가 해오던 갖가지 수단과 자율동원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북한의 개혁의지도 관계개선 노력도 나아진 것이 없다.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핵문제에 대한 부분적 해결을 간과한다면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반복하지만 북한의 체제는 특성 상 스스로 변할 수 없다. 시장경제 구조로 접근한다는 것은 아무리 신중하다 해도 북한 정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경제적 활력을 주기 위해서 군사비에 대한 지출을 현격히 줄여야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군조직에 더욱 밀착되어 있으며 대내외 정책은 본질적으로 군 중심이다. 경제의 효율성을 높히기 위해서는 원활한 통화체계, 시장기능의 도입, 경제고립탈피 (특히 남한과 일본과의 고립으로부터), 혁신된 기술의 광범위한 도입, 만성 에너지 부족해결, 빠른 시일 내 소비재 공급확대 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모든 조치가 북한 스스로의 자원과 힘, 기존의 권력구조, 대립상황의 현격한 완화 없이는 불가능 하다.


세계적 냉전 대립체제의 갈등구조는 사회주의의 붕괴로 일단락되었다. 아직도 붉은 노선을 유지하는 몇개의 국가의 종말도 예견되어 있다. 물론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국가들의 생존전략도 다양하다. 북한은 보수 방어적 전략을 쓰고 있으며, 중국은 적응 방어적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회주의 정권들도 점점 증가하는 위기와 모순과 외부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멀지않아 종말을 고하게 될것이다. 동독의 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과거 동독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동독은 그래도 유지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 체제가 자멸하는 데 불과 1년 이상이 걸리지 않았다.

이 경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사회주의 정권의 종말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부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붕괴의 성격은 더욱 파괴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인민대중으로 부터 그리고 밑에서 부터의 저항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외부에 의해서 조정될 수 없으며 다만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 외의 다른 과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의 대안으로 남한에서는 화해와 협조를 바탕으로 평화공존을 이루고 상호 조약을 통해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룬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도대체 화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정확히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반도 상황이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민족이라고 하는 공동체 감정에 앞서 체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대립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까지도 상호 불신을 해소할 효과적인 방안들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은 지난 날 상호 협조하는 가운데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경험들이 매우 적다. 1992년에 체결된 남북한 기본합의서도 선의의 뜻을 밝히는 하나의 선언에 불과하다. 1989년 이전 동서독 간 대립경험은 통일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체제 만이 남는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추구할 수 있는 남한의 통일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정책일 수 밖에 없다.

비교해보자면 지난 70, 80년대 동서독 관계는 갈등이 많이 완화되고 여러 분야에서의 다양한 협력관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 정상화' 뒤에는 대립체제에 대한 상호 간 진지한 이해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결여돼 있었다. 독일통일이 달성된 후 과거를 회상해보면서 아무도 '현실 사회주의' 붕괴에 외부적으로 작용했던 동방정책의 톨 속에 과연 상호이해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파악해낼 수가 없었다.


70, 80년대 동서독 정상화시기에 양독은 대립상황을 국가 사이의 국제적 조약으로 통제하였다. 동시에 분단 이나 통일과 같은 국가 문제에 대한 대립은 외교 테크닉에 의해서 은폐되거나 배제되어 왔다. 동독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에야 비로서 국가의 오랜 염원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몰락되기 전까지 양 국가 사이에 사안별, 체체적 갈등과 국가문제를 동시에 거론하고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였다. 통일문제는 체제대립 영역에 있어서 '양자 택일'의 문제이며 통일의 길에는 오로지 한체제를 위한 공간 만이 존재할 뿐이다.

통일의 모든 과정은 공통의 민족의식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통일된 이후를 고려한 정치, 경제적 발판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양체제의 장점을 함께 살린다는 연방체적 의미와는 다르다. 동독의 경우 대다수 국민들이 서독의 정치, 사회, 경제 체제를 통일 독일의 기본구조로 선택하였다. 붕괴된 동독의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통일 이후에돜 어느 정도 남아있었으나 그것도 오직 잠시 뿐이었다. 동독이 열리는 순간 모든 분야에 서독의 경제구조가 자리를 잡아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의 체제전환 작업이 옳다 그르다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것은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와 관련된 문제이다. 경쟁력, 효율, 이윤 들과 같은 개념이 결정적 변수이며 임금, 비용, 가격에 대한 국가의 조정은 더이상 쓸모가 없다.


반복하건대 분단국의 재통합은 한 체제가 다른 체제로 융합될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핵심문제이며 이것으로 부터 북한은 남북 국경을 확정하고 한반도 내 두개의 한국을 고착화 시키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하는 것도 실은 이를 통해 현재의 휴전선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고립되고 낙후한 복종국가인 북한이 번영된 세계의 경제력과 민주적 정치체제의 도전을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는가 ? 의 문제만이 남아있다. 남북한 모두 통일독일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를 유심히 관찰할 것이다. 남북한 모두 독일의 모델을 통합 방안으로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물론 독일의 통일이 이론과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급격한 변화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이자 현실정치의 산물이다. 인간은 과거의 오류를 거울삼아 새로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비슷한 조건에 기인하는 과정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형태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점이다.


한스 마레츠키(북한주재 동독마지막 대사, 번역 박상봉)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