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향수뿌린 강아지와 북한인권

박상봉 박사 2005. 10. 8. 10:11
 

향수 뿌린 강아지와 북한인권  

-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방법의 허구 -


유럽 여러나라를 다니다 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주인과 함께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강아지는 물론이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강아지도 많다. 심지어 대학 수업시간에 진도개보다도 훨씬 큰 쉐파트를 데리고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다. 슈퍼마켙에는 강아지 먹이용 통조림 진열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으며 이제 막 미용을 마치고 나오는 요크테리아로 부터는 향긋한 향수냄새 마저 풍긴다.

이렇듯 독일을 포함한 유럽사회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적지않은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프리카의 기아로 인한 참상이 국제적으로 커다란 문제로 보도되자 일부 지식인들은 독일인들이 강아지에 들이는 돈을 합하면 굶주려 죽어가는 엄청난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을 보면 독일인들이 강아지에 보이는 애정은 우리와는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또한 이렇듯 호강을 하며 자라는 강아지들도 우리 강아지들과는 판이하다. 교실이나 차 안에서 결코 떠들지 않으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언어들도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을 비롯한 독일사회는 이러한 유별난 강아지 사육을 두고 몇가지 논쟁이 벌어져 왔다. 첫번째 논쟁의 핵심은 문화적 관점으로서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고 가능한 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강아지를 선호하고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지내왔던 한 사회에서 강아지 사육에 관한 문제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다른 문화권이나 반대론자 측에서 이를 두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문화 전통적 관점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사회도 이런 관점에서 보신탕과 관련된 다른 국가들의 비판에 대응하여 왔다고 보여진다.


두번째 논쟁의 핵심은 인권적 차원에 관한 것으로 인간의 삶을 지키는 것은 우리 인류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관점이다. 과거 이디오피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여러나라에서 식량부족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갔다. 당시 이들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었으며 아프리카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세계인권단체들의 움직임도 바빴다.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한 구제활동에 참여하였고 군인들도 이들 지역에 파견되어 구제활동을 도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일사회에는 이들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호화스런 강아지의 생활에 대한 비교가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었다. 강아지에 많은 돈을 들이는 사람들을 인권이라고 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무책임한 독일인들이라고 빈정대는 문구들이 회자하였으며 아프리카 사람보다 독일에서 살고있는 강아지가 더 가치가 높다는 비아냥이 남모르게 확산되었다.

오랜동안 지속되어온 전통과 문화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일깨워 보려는 소수 지식인들의 공격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논란은 그렇게 쉽게 결론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동안에 굳어지고 누적되어 왔던 문화와 전통을 쉽사리 포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국가들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보신탕을 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올림픽을 거부할 것이라는 으름장에도 우리사회의 보신탕 먹는 습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과도 같이 한 사회에서 오랜동안 이루어져 왔던 습관이나 관행들은 쉽게 수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북한에 대한 이해를 두고 관련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북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지적하며 현 김정일 체제의 부당성과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북한 사회를 북한 내부로 부터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를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고 한 일간지는 모 연구원을 인용해 보도한 적도 있다.

이러한 내재적 접근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강아지 사육을 두고 벌어지는 첫번째 관점과 같은 문화적 전통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북한의 현 상황은 북한 사회주의의 전통과 입장에서 관찰해야지 남한이 남한의 관점과 시각에서 북한사회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몇몇 극단적 진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대북논의는 학문을 위한 학문에 급급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의 행복과 사람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어나가기 위해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논리라는 수단을 동원해 파악하고 관리해가는 것이 학자들의 몫이다. 학자들은 그들의 학술적 작업을 통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확인해가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실들을 파악, 관리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인권을 지적하며 북한사회의 정통성과 체제의 몰락을 거론하는 것은 강아지의 사치스런 사육이나 식용문제와 같은 차원이 아니다. 우리는 인권이라고 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거론하며 그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북한의 체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북한은 공산당 간부를 포함한 약 350만명의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이 식량이 모자라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쥐새끼를 잡아먹기도 하며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라도 이미 북한사회는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깨져버린 사회병리적 집단임에 틀림없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며 이러한 가치의 파괴를 학술적 방법론으로 재단한다는 발상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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