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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 대통령의 우려스런 통일인식

박상봉 박사 2021. 8. 17. 10:57

광복절 76주년 경축사에 나타난 대통령의 통일인식이 오류투성이다.

독일통일과 관련해 “1990년, 동독과 서독은 45년의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이뤘습니다. 동독과 서독은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고, 보편주의, 다원주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모델'을 만들었습니다”라는 찬양조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독일식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겠다”며 폄훼하던 분위기와 완전 딴판이다. 분단국의 대통령이 이토록 우왕좌왕, 때로는 확증 편향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단동안 서독과 동독은 서로 신뢰한 적도 없고 신의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통일 직전까지 서독은 동독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상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동베를린과 본에 동서독 대사관이 아닌 상주대표부가 설치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베를린 주재 서독 상주대표부는 동독인들 사이에 ‘백악관’으로 불렸고 1989년 8월에는 동독인 131명이 진입해 장벽을 열어젖힌 역사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8월 13일은 동독의 기습적인 베를린 장벽 설치 41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그 해 불과 2달 전인 1961년 6월 15일 울브리히트 서기장은 “Niemand hat die Absicht, eine Mauer zu bauen”(아무도 베를린 장벽을 건립할 의도가 없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역시 공산 좌파는 꼼수와 프로파간다의 DNA를 갖고 있다고나 할까.

분단 직후인 1948년 소련과 함께 베를린 봉쇄를 단행했던 것도 동독 공산정권의 만행이었다.

 

물론 동독에 우호적인 손길도 있었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계기로 다양한 동서독 교류 협력이 추진된 바 있지만, 동독은 이를 재정난 해결의 기회로 만들려는 우를 범했다. 브란트 총리 보좌관 귄터 기욤의 스파이 행각이 드러나 총리직을 사임해야 했다.

 

동독이 서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제 핵미사일 SS-20을 배치하자 서독도 미국산 퍼싱2을 배치해야 했던 상황도 분단 45년 역사의 주요 사건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동독의 명맥만이라도 이어보고자 했던 한스 모드로우(동독 공산정권의 마지막 총리)의 경제공동체 제안마저도 헬무트 콜 총리에 의해 거부되며 자유민주통일이 가시화되었다.

 

분단 기간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이주한 사람은 무려 400만 명에 달했다. 45년 분단의 역사가 신의와 선의에 기초했다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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