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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스파이 교환

박상봉 박사 2017. 6. 1. 19:47

동서독 스파이 교환

 

포로교환 현장 서베를린-포츠담 브리지


서베를린과 동독 포츠담을 연결하는 다리가 글리니케 브리지다. 이 다리는 동서 스파이들의 맞교환 장소로 유명하다.

첫 번째 스파이 교환은 1962210일에 이루어졌다. 분단 후 13년 만의 일이다. 오전 844분 두 남자가 다리 양 쪽에서 출발해 한 명은 서독, 다른 한 명은 동독을 향해 걸었다. 스라이 2명의 교환으로 미국 CIA 소속 스파이 게리 파워스(Gary Powers)와 소련 KGB 소속 스파이 루돌프 아벨(Rudolf Abel)이 당사자였다. 동서독 분단 후 최초의 스파이 교환이었다.

게리 파워스는 조종사였다. 그는 196051일 파키스탄에서 이륙해 소련 상공을 정찰하며 비밀 군사기지를 촬영하다 격추되었다. 낙하산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진 파워스는 소련 군사법정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모스크바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블라디미어에 수감되었다.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은 폴란드어, 독일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인물로 이미 2차 대전 중에 스파이로 활약, 독일군에 잠입해 정보를 소련군에게 넘겼던 스파이였다. 전쟁이 끝나자 아벨은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작가와 화가로 위장한 채 지냈다. 에밀 골드퍼스라는 가명으로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전국에 스파이망을 조직해 활동했다. 그의 스파이 행각은 1957년 소련에서 망명한 자가 제보해 드러났으며 30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다.

두 번째 스파이 교환은 1985년에 일어났다. 61127명의 스파이가 맞교환되었다. 폴란드와 동독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던 미국 CIA 요원 23명과 동독 스파이 4명을 맞바꿨다. 23:4의 맞교환을 보아 동독 스파이 4명은 비중이 매우 큰 요원임을 짐작케 한다

세 번째 교환은 1986210일 이루어졌다. 소련 반체제 인사였던 차란스키와 동독 스파이 사이의 거래였다. 차란스키는 반체제 인사로 197813년 노동형에 처해졌다. 그의 아내가 이스라엘 여행 중에 이 사실을 폭로해 유럽에 알려졌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동독 측에서 차란스키와 3명의 서방측 스파이, 서독 측에서는 러시아 컴퓨터 전문가와 4명의 동독 스파이가 교환되었다. 당시 포로 맞교환 장면은 서독 측 TV로 생중계되었던 반면, 동독 방송에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외에도 빌리 브란트 총리 재임 시, 총리실 고정간첩이었던 기욤 부부는 1981년 포로교환으로 동독에 인계되었다 브란트 총리는 이 사건으로 1974년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56년 위장탈출해 서독에 정착했던 기욤은 지령을 받고 1957년 사민당에 입당, 1968년 프랑크푸르트 시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모든 스파이 교환을 전담, 추진한 인물은 동독 변호사 볼프강 포겔(Wolfgang Voge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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