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다시보기

서독의 대동독정책 및 시사점(I~XVII)

박상봉 박사 2017. 2. 5. 17:54

서독의 대동독 정책 및 시사점(I)

- 아데나워 서방정책, 브란트 동방정책, 콜 통일정책

   

본 글은 신아시아 연구소(NARI)의 학술등재지 신아세아 2016년 겨울호에 발표한 에세이로 18개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독일통일은 왜곡으로 얼룩져있다. 독일통일에 대한 장맛은 모른채 구더기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첫째, 많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이념적으로 동독이 서독 체제에 편입함으로 완성된 통일을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 독일어 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인용, 재인용을 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가 확대되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설계한 에곤 바에 대한 과도한 평가로 아데나워의 서방정책, 브란트의 동방정책, 콜의 통일정책으로 이어지는 통일의 과정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I.

독일통일은 세계 현대사의 기적이다. 나치 전범국의 죗값으로 분단마저 감지덕지 했던 독일이 꿈에나 가능했던 통일을 이루어냈으니 그렇다. 독일통일은 우리가 참고해야할 유일한 모델인데도 바라보는 시각은 왜곡덩어리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공식적으로 독일식 통일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기야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권이나 초기 박근혜 정권도 야당이나 언론에서 독일식 흡수통일을 지향하느냐, 묻기라도 하면 펄쩍 뛰며 부인하기 바빴다.

서독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보라며 김정은 독재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평화적이라고 몰아 세우는 일도 있다. 통준위 회의장에서는 친미와 종북의 화해를 주문하는 일도 있었다. 이성의 마비요, 선동에 중독된 사회의 단면이다.

독일통일의 실체를 모른 채 왜곡된 주장에 부화뇌동(附和雷同) 한다. 우리가 말하는 독일의 흡수통일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흡수’(Absorption)라는 단어는 통일에 불만을 품은 동독 공산 지배층과 서독의 좌파 언론이 합작해낸 선동적 언어에 불과했다. 이 단어를 우리 언론이 집중 보도하자 학자, 전문가들이 반복 사용하며 굳어졌다.

통일은 동독 공산권력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던 자, 서독의 좌파 단체와 좌파 언론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태생적으로 반자본주의자들의 꿈은 진정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 꿈이 통일과 함께 사라졌다. 이들의 분노가 흡수에 담겨져 통일에 대한 저주로 등장한 것이다. 이 단어에는 배부른 서독이 가난한 동독을 무자비하게 착취한다는 저주가 담겨져 있다. 오시즈(Ossis)와 베시즈(Wessis)도 이렇게 태어났다.

일부 학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사라진 자리에 머릿속 장벽’(Mauer im Kopf)이 들어섰다는 주장에 흡수를 담아내기도 했다. 이런 불만, 저주, 비아냥 등의 흡수라는 개념이 오늘날 좌파당(Linke)에 녹아들었다. 이제 독일에서는 흡수라는 말을 듣기 어렵다. 이렇게 사라진 흡수가 한국에서 환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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