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다시보기

에곤 바의 통일관

박상봉 박사 2017. 1. 5. 14:38

에곤 바(Egon Bahr)의 통일관

에곤 바의 지치지 않는 동독 사랑


에곤 바가 동방정책의 설계자였다면 브란트는 동방정책의 시공자였다.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 추진과정에서 설계가 잘못된 것들을 발견해 어려움을 겪곤 했다. 왜냐하면 에곤 바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통일이라는 기본법 정신을 망각한 채 동서독이 함께 대화 및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일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동방정책을 빌미로 동독이 건재하길 바랐던 인물임이 여러 정황에서 드러나고 있다. - 통일 패러다임과 북한재건 참조


에곤 바(사민당)는 동방정책의 설계자다. 1969년 총리에 선출된 빌리 브란트는 바의 동방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소련, 폴란드, 체코 등과 국교를 수립하고 동독과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해 기민련과 보수권으로 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던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브란트와 에곤 바의 통일관은 전혀 딴판이었다. 브란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통일을 지향했다면 바는 이런 전제없이 동서독이 함께 대화 및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통일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헬무트 콜은 아네나워의 서방정책,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토대로 강력한 통일정책을 추진해 기적과 같은 통일을 이루어냈다. 에곤 바의 통일관은 다음의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이 발언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5일 만의 일로 그 상황에서도 동독과의 화해 협력을 주장하고 있었다. 당시 에곤 바는 사민당 총재단 위원이었다.  



에곤 바의 1989년 11월 14일자 발언(베를린 장벽 붕괴 5일 후)

 

"나는 지금도 통일이 대동독 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는 인식 하에 

통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일생일대의 거짓이라고 평가한다.

내가 생각하는 독일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동독주민을 돕자율적 의사결정을 실현시켜 주는 데 있다"

 


좌파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던 에곤 바는 1996년 통일 후 6년이 지난 시점에도 “Von Konrad Adenauer bis Helmut Kohl waren alle Bundeskanzler inoffizielle Mitarbeiter des CIA”(아데나워부터 헬무트 콜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는 미국 CIA의 비정규 요원이었다)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김영희의 맹목적인 반미정서와 같다.

중앙일보 김영희 기자는 그의 책 '베를린 장벽의 서사'에서 사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의 압력, 의회와 싱크 탱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군산복합체의 괴력을 당해낼 힘이 없어 결국 한 세트 2조원이 넘는 사드를 최저 한 세트, 최고 네 세트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신념에 차서 서술하고 있다. 미국의 압력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사드를 배치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거짓이다. 사드는 우리가 부지만 제공하고 모든 설치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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