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친화적 환경

통일시대, 탈북자의 역할

박상봉 박사 2015. 10. 1. 09:57

통일시대, 탈북자의 역할

 

이 글은 2014년 6월 17일 데일리NK가 주최한 세미나 "탈북자가 통일시대 주역이다"에서 발표한 글임.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610일 중국을 거쳐 태국으로 탈출한 탈북자 13명이 태국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는 탈북자의 뜻대로 남한에 입국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불안하다. 작년 라오스에서 체포된 9명의 탈북 청소년이 북송된 사실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통치권 밖으로 탈출했으니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보호가 가능할텐데, 왜 이토록 불안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탈북자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이해가 있다면 그 대책도 더욱 세심해 질 것으로 생각된다.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호네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통일의 문을 열어젖힌 사람들이 바로 동독 탈출자들이었다. 남한에도 26천여명의 탈북자가 정착해 있고 중국 등 제3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탈북자 수도 10만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일시대, 탈북자 역할을 재조명해 보고 보다 나은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I. 북한발 이슈 탈북자와 국제사회

 

탈북자에 대한 국내외 관심은 분단 초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60, 70년대 탈북자는 국가 영웅으로 환대받았다. 그 만큼 탈북도 국가적 중대현안으로 다뤄졌다. 80년대 중반 공산주의 국가들의 개혁 개방과 함께 탈북의 문도 조금씩 넓어졌다. 90년대 들어서는 러시아 북한벌목공의 탈출이 보도되어 국내외 관심을 끌었고 2000년대에는 보다 본격적인 탈북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초기의 탈북이 냉전 시기 체제경쟁의 산물이었다면 오늘날의 탈북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로움을 찾아 떠나는 일이다.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으며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이다. 남북 화해협력을 부르짖던 시대에도 탈북행렬이 끊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중국이 탈북자를 체포해 강제북송을 해도 탈북행렬이 이어져 왔다. 이렇듯 오늘날의 탈북은 분단 60년 억압과 배고픔으로부터 탈출해보고자 하는 밑으로부터의 조용한 반란이다.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을 이야기해도 탈북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런 탈북의 의미 때문이었다. 매년 수십명에 불과했던 탈북자는 2천년대 들어 100명을 넘더니 기아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2년도에는 탈북자 1천명 시대를 열었고 이후 10여년 간 매년 2천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남한에 입국하고 있다. 물론 김정은 집권 후 탈북자 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이다.

무엇보다도 탈북자는 정치적 박해와 인권침해의 당사자이다.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에 따르면 북한 내 인권침해는 제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마이클 커비 위원장은 지난 2월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서 북한의 경우 R2P(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주민 보호의무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사례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로 북한 인권문제를 해결해야할 상황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절차도 추진하고 있다. 20년 이상 국제사회 골칫거리인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세습독재가 건재하고 있는 한 결코 해결되기 어렵다. 정치적 박해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각종 인권침해는 북한 세습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통치수단이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존재는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자 통일을 여는 마중물이다. 동독 탈출자가 베를린 장벽을 허물어내고 동독 공산정권을 몰락시킨 것과 같다.

 

1. 인권: 인류보편적 가치 

북한 발 이슈는 대부분이 국제사회의 이슈이기도 하다. , 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는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로 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를 운영하고 있다. 마약제조, 슈퍼노트 등도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다. 더욱이 탈북자의 인권침해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탈북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는 응급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심각하다. 2000년초 베를린에 나치의 만행을 추모하는 기념관 설립행사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막지 못한 것이야말로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런 일이었다고 선언하고, 이 엄숙한 자리에서 현재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과거 나치에 버금가는 만행에 잠잠한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수치라고 선언한 바 있다. 오히려 탈북자 문제는 하나의 현대판 나치만행으로 전 인류에 대한 도전이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류가 감당해야할 과제라는 인식이다.

프랑스의 인권운동가 피에르 리굴로, 독일인 의사 노버트 폴러첸, 미국의 탈북자 대모 수잔 숄티가 적극적으로 대북 인권문제를 증언하고 있는 것도 인권은 인류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엔과 EU가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오고 있으며 미국, 일본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한데 이어 캐나다 등 여러 나라들이 동참하려는 것도 인권의 보편성 때문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2011년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룰 설립해 북한 인권침해를 유엔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토록 했다. 마이클 커비 위원장을 중심으로 COI2년 동안의 조사활동을 20142월에 마감하고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인권침해는 최고 지도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인도 범죄라는 특징이 있다며 유엔안보리가 북한 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이런 제도적 인권침해가 김정은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또한 국가의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R2P는 국가는 자국민을 대량 살륙,인도에 반한 범죄,전쟁 범죄 및 인종청소 등 4대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R2P는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국제사회는 국가의 1차 책임 수행을 지원할 책임이 있고,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는 경제제재와 같은 강제조치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엔의 노력과는 달리 중국 정부의 반응은 기존의 입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20143월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했던 사건을 조사하던 중 남부지역에서 체포된 20대 탈북자 3명에 대해 별다른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보츠나와가 이 시점에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키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2. 중국정부의 어깃장

 국제사회의 인권의식과 달리 중국의 태도는 자의적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중국은 해마다 수천명의 탈북자들을 북송하고 있다.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북송한 탈북자 수는 수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증언한다. 이렇듯 중국은 정치적 박해는 물론이고 굶어죽기 싫어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있다. G2 국가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세계를 리드한다는 중국이 198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하고도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탈북자를 북송하고 있다.

유엔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체결해 난민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난민의 법적 지위와 처우에 관련된 문제에서 국가의 행위를 규율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67년 난민의정서에 서명한 국가에 속한다. 유엔난민협약 33조에는 처별 우려가 있는 나라로 송환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미 하원 스미스 의원은 탈북자를 독재국가, 특히 북한같은 나라로 송환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경제적 동기에 따른 불법 입국자로 간주해 국내법, 국제법, 인도주의에 따라 사안별로 처리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이런 태도는 탈북자 보호에 수동적인 우리 정부의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중국 동북3성은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자들로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정부 때에는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인권단체를 향해 우리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탈북자를 우리 정부가 모두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며 우리 정부의 무관심한 탈북자 보호 대책을 문제 삼기도 했다.

 

3. 정부의 수동적 대응

탈북자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수동적 자세도 문제다. 우리의 동포이자 헌법에 따르면 자국민인 탈북자의 인권침해가 20년 이상 지속되어도 정부는 물론 국회의 보호대책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유엔, 미국, 캐나다, EU 등 국제사회가 탈북자 인권 청문회를 열고 대북 결의안을 채택해도 북한 인권법은 10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의 탈북자 보호도 중국 정부와 언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남한에 정착한 26천여명의 탈북자들은 우리가 도룡뇽보다 못하냐며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꼬집기도 했다. 20135월 라오스로 탈출한 탈북 청소년 9명이 북송된 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들어낸 대표적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11월에는 쿤밍에서 탈북자 13명과 이들을 돕던 조선족 2명 등 15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유엔과 미국이 이들의 북송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이들도 북송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올해 3월 말레이시아 발 중국행 비행기 추락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체포된 20대 탈북자 3명에 대해서 외교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실망을 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 정부의 탈북자 대책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의 조용한 외교의 틀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말이 조용한 외교지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보는 종속적이고 수동적 외교의 모습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 하에서 탈북자는 천덕꾸러기였다. 이런 탈북자에 대한 인식은 재야 정치권에 여전히 잔존해 있다. 현 국회의원이 남한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자를 향해 조국을 배반한 자라고 했던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이런 현상이 북한인권법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북한인권법은 2005년 처음 추진됐으나 북한을 자극해 남북 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는 당시 열린우리당(현 새정치연합)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8년째 진척되지 않고 있다. 2004년과 2006년 미국과 일본이 각각 북한 인권 관련법을 만든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북한인권담당 특사를 임명했고, 올해 1월에는 외국을 떠도는 탈북 어린이들을 위한 북한어린이 복지법도 발효시켰다. 현재 국회에는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과 심재권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6개의 서로 다른 북한인권법안이 계류 중이다.

  

II. 탈북의 진화

 

개인탈출-기획탈북-상업화

분단 초기 탈북은 남북 간의 체제경쟁의 성격이 강했다. 1983년 북한군 이웅평 대위는 미그 19기를 몰고 탈출해 남한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냉전 시기 체제 경쟁의 최첨단에서 남북한은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1996년에는 이철수 대위가 역시 미그기를 타고 탈출해 남한 땅을 밟았다. 당시 탈북자들은 최고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1990년 후반 김일성 사후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악화일로의 경제난을 정치적 탄압과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만회하려 했다. 2002년에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해 경제회복을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생활고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후 탈북행렬은 본격화되었다. 개인적으로 뿔뿔이 중국으로 탈출해 남한행을 택했던 탈북자들은 국내외 인권단체나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보다 진화된 탈출루트를 찾아냈다.

1994년 탈북에 성공한 이민복은 러시아, 유럽 등지를 방황하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의 도움으로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를 거쳐 남한에 입국했다. 최초의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첫 케이스였다. 2001626일 길수 가족 7명도 UNHCR 베이징 사무소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후 중국 내 외교공관은 탈북자들의 탈출 타깃이 되었고 스페인, 미국, 캐나다 대사관이나 독일 및 일본 학교들로 탈출자들이 밀려 들었다. 당시 이런 류의 탈북을 기획탈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해마다 탈북해 남한으로 입국하는 숫자도 년 2천명을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이른 바 기획탈북이다. 2012년 김정은 집권 후 탈북추이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탈북자의 3대를 멸하라는 지시에 이어 북중 국경에 철조망이 세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최근 들어 탈북자가 급감하고 있지만 일시적 현상이다. 이미 탈북자는 북한에서는 살 수 없는 극한에 내몰린 주민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제 탈북은 하나의 돈벌이 사업이 되었다. 탈북의 상업화인 셈이다. 조직적인 브로커가 개입해 돈을 북한을 드나들며 해외나 남한에서 보내는 돈을 전달하고 주민들을 안전하게 탈북시킨다. 특히 탈북여성은 인신매매범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돈벌이이자 사업이 되고 있다. 남한에 정착하는 탈북자의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또한 탈북 상업화는 탈북자를 정치적 수단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탈북자의 종착역은 통일이라는 의미와도 무관치 않다.

 

 

III. 탈북자: 통일을 향한 마이스터 키

 

1989년 여름 동독탈출자들은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켰고 호네커 공산당 총서기를 축출한 데 이어 1990103일 동서독 통일의 길을 열어젖힌 장본인들이다. 통일은 동독인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은 서독 정부와 국민에게 주어진 역사적 선물이다.

 

1. 인권침해 고발자

  탈북자가 26천명을 넘어서며 사회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일부 청소년들은 탈북자를 우리의 부를 빼앗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는 이런 폐해보다 대한민국 미래에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탈북자의 존재 때문에 우리는 중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김정은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강제할 수 있다.

한 종편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프로그램은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구성되어 국내외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 NHK, 미국의 LA 타임스, 프랑스 르몽드 및 CNN 방송이 직접 이 프로를 취재해 보도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지난 3월에는 동아일보와 아사이 신문이 공동으로 60명의 탈북자를 취재해 북한의 인권침해를 심층 보도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해외언론의 취재열기야 말로 탈북자의 실재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다. 그보다 앞서 Newsweek200137“Escape from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탈북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독일 주요 일간지 Die Welt2002315일자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저승에서나 가능한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해외언론의 관심으로 국제사회는 분명하게 북한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의 실체를 인지해 가고 있다.

특히 신동혁, 장진성, 장성산, 강철환, 이애란, 강명도, 조명철, 조진혜, 김은주, 김성민 등 탈북자들은 한명 한명이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인물들이다. 신동혁은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은 신동혁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신동혁의 수기 14호 수용소 탈출은 2012년 미국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 특파원을 지낸 블레인 하든의 도움으로 세상에 빛을 보았다.

통일전선부 출신 장성산은 최근 뉴욕 타임스에 기고문을 싣고 북한 세습체제의 부당성을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그의 수기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영문으로 번역되어 출판될 예정이다. 시 올림픽에 참가한 204명에게 북한 인권침해를 생생히 알린 바도 있다. 장진성은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무대에 올렸다. 남한에 계신 하나님 북한에도 찾아오시라고 하는 노래가사는 북한 주민의 신음소리처럼 관객의 가슴을 후비고 있다.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조진헤는 중국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를 통해 미국으로 추방된 탈북자로 미국에서 재미탈북자 연대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대모로 알려진 수잔 숄티 여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김주일은 2014317일 제네바에서 유엔인권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COI 보고서 이행 촉구 시위를 열었다. 이 외에도 강철환, 이애란, 강명도, 김은주, 김성민 등의 역할도 지대하다. 이들 탈북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정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결국 중국정부도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영원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가 되고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단한다면 통일의 기회는 성큼 다가올 것이다.

 

2. 통일한국 지킴이

탈북자들의 역할은 통일 후에도 중요하다. 통일은 70년 상이한 체제에 익숙한 남북한 주민들의 만남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북한주민의 열등감과 불만이 폭발할 개연성이 상존한다. 동서독 통일 후 베를린 장벽은 사라졌지만 동서독 주민 사이 '머릿 속 장벽(Mauer im Kopf)'이 생겨났다고 했을 정도로 이질감과 갈등이 컸다. 탈북자는 이런 남북 간의 괴리를 이어줄 다리와 같다. 남한 사회에서 생활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거부감없이 전달해 줄 적임자이다. 무엇보다 북한재건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경제 체제의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또한 남한사람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중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와 함께 통일 후에도 재기를 꿈꾸고 있는 공산 엘리트들의 불필요한 선동을 막아낼 유일한 사람들도 탈북자다. 2013년 독일이 통일된 지 23주년이 되는 해로 통일 후 7번째 총선이 치러졌다. 이 선거에는 두 가지 이변이 일어났다. 하나는 독일 정당사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자민당(FDP)의 원내 진출이 무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독 공산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Die Linke(좌파당)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일이었다.

잘 알려진대로 자민당(FDP)은 전통적으로 기독연합당(CDU/CSU)와 사민당(SPD)에 이어 제3당으로 1948년 건국 이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당이었다. 자유시장경제를 당론으로 채택해 오랜 동안 연정파트너로 국정에 참여해 왔던 정당이었다. 이런 전통을 이어왔던 자민당(FDP)가 정당사 최초로 득표율 5%를 획득하지 못해 원내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대신 그 3당의 지위를 좌파당(Die Linke)가 이어받았다.

좌파당은 1989년 동독내 무혈혁명 시기 해체의 위기를 겪던 공산당(SED)의 후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독 공산당 SED를 해체 위기에서 건져낸 인물은 그레고르 기지(Gysi) 변호사였다. 개혁 사회주의자였던 기지는 공산당 SED를 민사당(PDS)로 바꾸고 새로운 민주주의 얼굴을 지닌 사회주의당을 기치로 내걸고 유권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동독 공산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동독주민들이 표를 몰아주었다. 그 후 서독 사민당에서 극좌 세력으로 분류되는 오스카 라퐁텐이 탈당해 민사당(PDS)와 합당한 것이 지금의 좌파당(Die Linke). 좌파당은 우리의 경우 통합진보당과 유사하다. 동독 노스텔지어를 자극해 구 동독 주민들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통일 과정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거나 상대적 박탈감이 클 때 좌파당의 득표전략은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통일 후부터 이런 통진당류의 종북좌파들의 정치적 선동이 북한 지역을 강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통일된 한국이 합법적으로 북한 추종세력에 의해 조종될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정치적 돌연변이를 막아낼 유일한 사람들도 탈북자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탈북자 정책이 단순한 새터민 정책을 넘어 통일을 만들고 그 이후 통일로 인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해결하는 과정 전체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V. 탈북자, 전면 수용을 천명하라

 

정부는 신년 초 통일대박을 선언하며 앞으로 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갈 것임을 선언한 셈이다. 이렇듯 통일에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정부가 이제는 적극적인 탈북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그 첫걸음이 우선 전 세계를 향해 북한을 떠난 모든 탈북자는 우리가 보호한다는 사실을 천명하는 것이다. 통일대박을 얻기 위해 치러야할 당연한 희생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공짜인생이다. 우리나라 근 현대사가 외세 의존적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치욕의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도 우리 힘이 아니었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이 우리 안보를 지켜온 셈이다.

건국 60주년을 훨씬 넘어선 대한민국이 또 다시 탈북자 문제를 남에게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에 은신해 있는 탈북자의 규모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탈북자를 방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조용한 외교는 탈북자 처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소극성과 무책임을 대변하는 대명사에 불과하다. 국민 보호를 중국에 떠맡기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이다.

탈북자는 이미 전 세계에 흩어져 남의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은 물론 캐나다, 미국 등지에도 탈북자가 보호받고 있다.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며 국제사회를 향해 통일대박을 선언한다면 자가당착이다. 서독은 이미 분단시절 탈출 동독인들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호해 왔다.

동독 정부가 포기했던 수십만명의 노약자를 수용했으며 24억 마르크를 들여 정치범을 사들였다. 이 프라이카우프(Freikauf)야말로 서독 정부가 얼마나 동독주민들을 보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대변하는 프로젝트다. 이렇듯 서독 정부가 분단시절 수용한 동독인은 350만명이 넘는다. 26천명을 수용하고 온갖 엄살을 떠는 우리와 비교가 된다.

1989년 여름 동독 탈출이 정치적 저항의 성격을 띠자 콜 총리는 강력한 통일 리더십을 발휘해 헝가리 정부로 하여금 대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토록 했다. 이 결정으로 한달여 만에 24천여명의 동독주민이 이 루트로 서독 땅을 밟았다. 또한 체코 프라하 서독 대사관으로 들어가 서독 행을 요구하던 17천여명의 동독주민도 남김없이 서독에서 수용했다. 동독 땅을 떠난 모든 동독 주민들은 어김없이 서독 정부의 보호를 받았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주변국가들은 물론 서유럽 국가들이 동독 탈출자로 고통을 받도록 방관하지 않았다. 이런 나라라야 통일의 자격이 있다. 이런 서독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 속에 동독 탈출자들은 19891019일 호네커 총서기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119일에는 베를린 장벽(Berliner Mauer)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1990103일 통일을 이루었다.

탈북자들, 이밥과 고깃국이 아니라 옥수수 죽도 김정은 정권에 착취당하며 정치적 박해에 시달려온 자들의 외침이다. 이들의 자유와 풍요로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행렬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지난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귀중한 교훈이다. 통일 전에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존재 탈북자. 정부는 이런 귀중한 통일의 열쇠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갈 탈북자의 존재를 지렛대로 활용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고 통일의 미래를 창조해 가야 한다.

우선 전 세계를 향해 탈북자는 전원 수용한다는 방침을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등에서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그들이 제3국의 보호를 받게된 이유를 찾아내 시정해야 한다. 국민을 제3국에 맡기는 3류 국가가 되어서는 통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탈북자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우리가 보상한다는 방침도 정해 주변국들이 탈북자로 인해 피해받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통일대박의 첫걸음이다.

I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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