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친화적 환경

대북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박상봉 박사 2016. 3. 5. 15:51

대북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개성공단 폐쇄, 레짐 체인지

1994트로이한트와 한반도 통일이 출판되었다. 거의 자비 출판이었다. 독일통일 후 불과 4년여가 지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통일 관련 화두는 단연 정치적 통일에 관한 것이었다. 왜 독일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했으며 서독은 어떤 정치적 과정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냈는가와 같은 주제들이었다. 당연히 통일의 경제적 측면을 다룬 책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10여년이 흘러 관심이 거의 사라질 무렵이었던 20049월 자유기업원(현 자유경제원)이 지원을 해주어 트로이한트와 한반도 통일이 남북경제통합론로 새롭게 탄행하게 되었다. 과거 독일에서 가져온 자료들을 추스르고 한국적 상황을 더해 한국판 트로이한트를 마련해본 것이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적지 않은 관심이 물밑에서 몰려왔다. 단체 주문이 들어오기도 하고 관련 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자문을 요청해 오기도 했다. 조동호 부장, 최이섭 과장 등이 당시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2015, 그리고 또 다시 10년이 훌쩍 흘렀다. 북한이 3차례 핵실험을 하고 북한의 도발이 이어져도 실질적인 통일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새해 벽두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빛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감히 할 수도 없었던 개성공단 철수에 이어 북한의 레짐 체인지를 꺼내 들었다. 북한도 놀랬고 중국도 놀랬지만 가장 당황한 사람은 우리 사회 햇볕정책을 주도해온 사람들이었으리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 도발 더욱이 2, 3차 핵실험이라는 직격탄을 맞고서도 감히 남북 대화를 단절하거나 화해 협력정책이라는 기조를 깨지 못했다. 고작 내린 조치가 5.24조치였다. 햇볕론자, 대화론자들은 이런 유약한 이명박 정권까지도 대북 강경책을 썼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파탄낸 주범으로 몰아 부쳤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대화의 주술, 화해 협력의 마술에 빠져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치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고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단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시대에 우리의 할 일은 제대로 된 통일준비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남북경제통합론은 이런 요구에 대한 12년전의 대답이었다. 이 책의 당시 서문을 다시 읽어보며 통일준비의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져보자.

 

독일통일이 주는 두 가지 교훈은 통일의 역사성과 현실성이다.

전자는 분단을 하나의 종결된 상황으로 파악하지 않으며 역사의 필연인 통일을 목표로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 진행상황으로 이해한다. 다른 한편 후자는 통일에 대한 감상주의를 경계하며 진정한 통일은 많은 과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후에나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통일의 역사성은 생전에 예상치 못한 통일을 맞으며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총리가 감격에 겨워 묘사한 “Jetzt waechst zusammen, was zusammen gehoert”라는 명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문구에는 깊은 민족애와 함께 분단은 반드시 종결된다는 역사적 당위가 깊이 묻어나 있다. 굳이 번역한다면 영어로는 “Now it grows together, what was born together” 이다.

통일의 현실성은 동독 경제재건을 위해 설립한 트로이한트의 2대 대표였던 비르기트 브로이엘(Birgit Breuel)의 철학이었던 “Es gibt kein Butterbrot umsonst”라는 명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또한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공짜로 버터 빵은 얻을 수 없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말에는 통일이 진정한 통일, 성공한 통일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과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가 함축되어 있다. 트로이한트의 초대 대표였던 데트레프 카르스텐 로베더가 동독 공산당의 후원을 받던 적군파(RAF)에 의해 암살된 것도 이 과제가 얼마나 힘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이 통일과 함께 감당해야할 과제를 역사적 과제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분단이 냉전의 산물이었다고 한다면 냉전이 종결된 21세기에 드러날 역사적 산물은 통일이다.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동서독 통일이 가능했던 것의 본질은 바로 이런 통일의 역사성 때문이다. 남북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또 하나의 분단의 상징이다. 베를린 장벽이 철거된 것같이 비무장지대의 해체도 머지 않았다. 이것이 역사적 순리이며 통일의 역사성이다. 한반도에서 끊이지 않는 대량탈북이 이를 예고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 개발은 역사에 대한 역행이자 냉전을 고착화하려는 김정일 집단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이런 역사성 속에 우리의 통일정책과 통일외교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다가올 통일을 성공적인 통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통일은 역사가 우리에게 준 기회이다. 독일통일은 이념적으로 대립된 두 체제가 통합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잘 연구해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동서독 통일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냉전의 두 체제가 하나의 국가가 되는 전례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통일 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 사회혼란을 야기할 때마다 콜 통일수상은 이런 엄청난 통합이 과거에 있었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국민에게 호소했고 국민들은 콜 총리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가 16년을 수상으로 재임한 독일 최장수 통일총리 콜이다. 이런 콜 총리의 고백이 한반도 통일의 경우에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진정한 통일은 성공적인 남북한 경제통합을 의미한다.

정치적 통일은 이루었으나 통일된 사회에 경제침체가 장기화되고 실업자가 넘쳐나며 국민소득은 후진국 수준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아니다. 따라서 통일의 본질은 경제적 차원의 성공적인 통합을 뜻한다. 이를 위해 통일된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해야 함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경제통합의 핵심은 재산의 공동소유라는 명목 하에 공산당이 독점하고 있는 인민재산을 대중에게 환원해 시장경제 체제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독일에서 이일을 담당했던 기관이 바로 트로이한트(Treuhand)였다. 통일 후 트로이한트는 동독 내 모든 재산(부동산, 기업)을 관할하고 이 재산들을 적당한 투자자들을 찾아내 판매하는 일을 담당했다. 무엇보다도 동독에 존재하고 있던 85백여개의 기업을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은 이 기업의 주된 업무였다.

하지만 트로이한트의 업무는 예상외의 부작용을 불러일으켰고 동독 경제재건 작업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유발했다. 트로이한트의 조직, 업무, 판매 등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어떤 문제점들이 이 과정에서 드러났는지 파악해 우리의 경제통합에 대비해야 한다. 독일경제통합 정책의 장단점들을 파악해 우리의 경제통합을 준비해보는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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