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이해 오해

KBS 다큐멘터리,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 특집’에 대한 우려

박상봉 박사 2010. 7. 7. 17:24

재고해야할 공영방송의 역할

KBS 다큐멘터리,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 특집’에 대한 우려

 

 

 2009년 11월 3일 KBS는 베를린 장벽 20주년을 맞아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 특집 - 독일통일.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방영했다.

하지만 이 방송은 독일통일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기 보다는 장벽붕괴 20주년에 맞춰 특집방송을 해야 한다는 관행에 따라 제작된 다큐멘터리임을 직감한다. 이미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독일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확대 해석해 통일의 진실과 진면목을 전하는데 실패했다고 보인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격언에서 시사하듯이 구더기 이야기만 잔뜩 늘어놔 감히 장을 담기를 두려워하는 식이다. 막중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특집 방송이었다.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을 맞아 현장에서 장벽 도미노 퍼모먼스를 행하고 있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 기회

 

  ■ 유일한 분단국가로 통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하는 국가적 아젠다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도를 넘고 북한의 급변사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통일문제는 우리 다음세대에 까지 국가적 차원의 영향을 끼치는 중대사안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통일에 관련된 사안은 보다 신중하게 다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분단을 해결하지 못하고 50년 후의 미래만 내다봐도 통일은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구가 4천만으로 줄고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한 미래세대들에게 분단을 해결하라는 과제는 과다한 짐이다. 6.25 전쟁도 모르고, 국제합동조사단 전문가 75명이 조사해서 발표한 천안함 사태의 원인에 대해 비전문가가 전하는 왜곡된 정보를 들이대며 부정하려는 거의 30%에 달하는 국민을 두고 통일이라는 아젠다는 너무 무겁다.


  50년 후의 상황만 내다봐도 통일은 우리 세대에 마무리해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과제임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일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하고 통일을 꼼꼼히 대비해 통일의 자신감을 회복해 역사가 우리에게 기회를 부여했을 때 통일을 쟁취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비상계획을 만들고 통일외교를 가동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설득해 우리 세대에서 통일된 한반도를 이루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인식 하에서 독일통일에 대해 구더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책임있는 공영방송의 역할이 아니다. 독일통일 불가라는 과거 통일론자들의 구호에 동화되어 현장의 Fact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심지어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항목도 의도적으로 선별해 내용에 필요한 것만 방송에 담은 것이야 말로 제작진의 자질을 의심케한다. 물론 독일이 통일을 이룬 후 많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아직도 균형을 이루지 못한 동독과 서독의 생활수준이나 실업률과 같은 통계치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만과 부작용은 통일이라는 장을 담그는 와중에 생겨난 구더기와 같은 것들이다.


 독일통일 20주년 성적표

 

   독일통일 20주년의 성적표는 통일된 독일이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대변하고 있다. 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가 재임에 성공했고 볼프강 티에르제는 통일 직후 연방의회(Bundestag)의 의장을 지냈다. 동독시절 재야운동을 주도했던 만프레드 슈톨페는 통일 후 브란덴부르크 주 총리와 연방정부의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동독 무혈혁명의 주역이었던 요하임 가우크는 대통령 후보에 올라 지난 6월 30일에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어도 많은 독일인들이 그의 연설에 감동하고 있다.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는 올해 유럽각국 실업률을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20세 성인이 된 통일독일은 실업률 7.6%, 프랑스 10.2%, 스페인 19.7%, 핀란드 9.5%, 이탈리아 13.8%, 영국 7.8% 그리고 유럽평균 11.0 % 이다. 

  수출규모는 2천억 달러 이상으로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는 2009년 24조 7백억 유로(프랑스 19조 4천억 유로, 영국 15조 6천억 유로)로 유럽연합(118조 유로) 전체의 20.3%를 차지한다. 독일이 빠진 유럽연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동독, 폴란드, 심지어 귀화 터키인을 대표팀에 발탁한 독일축구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성인이 된 통일된 독일은 강력한 국가로 성장해 유럽사회를 앞에서 견인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KBS 다큐멘터리가 제작과정에서 선별해 발표한 설문조사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방송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항목은 과거 동독 생활을 묻는 내용이었다. 주어진 질문은 1) 동독생활은 나쁜 측면이 지배적이었다. 2) 동독생활은 좋은 측면보다 나쁜 면이 많았다. 3) 동독은 나쁜 측면보다 좋은 측면이 많았다. 4) 과거 동독은 좋은 측면이 훨씬 많았다. 등이었다.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동독출신과 서독출신의 대답은 매우 달랐다. 동독출신은 1)번 질문에8%, 2)번 질문에 32%, 3)번 질문에 49%, 4)번에 8%가 대답한 반면, 서독출신은 1)번 26%, 2)번 52%, 3)번 13%, 4)번 5%가 선택했다.


  이 설문조사 내용을 놓고 방송은 동독출신이 대답한 내용만 다큐멘터리에 소개했다. 즉 동독출신의 50%(57%) 이상이 과거 동독의 생활에 좋은 면이 많았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문 하나만 갖고 통일의식을 판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항목과 함께 제기된 4개의 다른 항목을 크로스 체크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KBS 특집 다큐멘터리는 바로 이 내용을 소개하며 통일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 즉 부정적인 결론으로 이끌었다.


 나머지 4개의 설문항목은 다음과 같다.


1. 다음 요인 중 동독 공산주의 통일당(SED) 체제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것

   입니까 ?


1) 동독의 경제적 재앙(Die Wirtschaftliche Zusammenbruch der DDR) :

   동독인 37%, 서독인 34%,  전체 독일인 34%

2)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폴란드, 헝가리 체제전환 :

   동독인 33%, 서독인 34%, 전체 독일인 34%

3) 1989년 가을 동독 내 반공산 저항과 시위 :

   동독인 21%, 서독인 17%, 총 18%


2. 1989년 가울 동독에 저항과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이 사건의 역사적 중요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


1) 독일 역사 상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

   동독인 79%, 서독인 82%, 총 82%

2) 동독의 역사에서만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

   동독인 15%, 서독인 11%, 총 12%

3)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아니다 :

   동독인 4%, 서독인 5%, 총 5%


3. 동독인들은 동독 공산체제를 평화롭게 극복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만 합니까 ?


1) yes(예): 동독인 85%, 서독인 81%, 총 82%

2) no (아니오): 동독인 11%, 서독인 12%, 총 12%


4. 1989/1990년 혼란의 시기에 바랐던 희망 중 현재 어떤 사항이 실현되었습니까 ?


1) 자유, 표현, 언론의 자유 및 여행의 자유에 대한 권리 획득 :

   동독인 90%, 서독인 94%, 총 93%

2) 법치국가 실현 및 법 앞에 평등 :

   동독인 56%, 서독인 78%, 총 74%

3) 물질적 복지 :

   동독인 60%, 서독인 51%, 총 54%


  총 5개의 설문항목과 답변을 평가해본다면 독일통일에 대해 독일인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고 통일로 이루어낸 성과과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설문조사를 보고 독일통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KBS의 특집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예) 설문조사 제1항목 결과


※ 본 블로그 ‘20주년 독일통일 성적표’를 검색하면 상세한 자료를 볼 수 있다.

 

  ■ KBS가 범한 또 하나의 오류는 이 특집에서 인용한 내용들이 대부분 통일 후 급조된 Die Linke(좌파정당)의 주장들이다. Die Linke는 통일 후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PDS의 그레고르 기지와 사민당의 극좌 오스카 라폰테인이 연합해 창당한 정당이다. 동독 지역에서 과거 동독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고 통일 후 상대적으로 열악한 동독의 경제적 상황과 삶의 질을 화두로 삼아 지지층을 확대하는 당이다.

  라폰테인이나 기지는 탁월한 언변으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기지는 그 언변으로 몰락해 가는 동독 공산당을 되살렸으며 라폰테인은 서독의 양철북으로 잘알려진 귄터 그라스와 같은 좌파적 지식인의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위 설문조사 항목 중 5번째 항목은 이들이 즐겨 제기하는 문제다.  

IUED



 참고적으로 KBS 다큐멘터리, ‘베를린 장벽붕괴 20주년 특집과 관련해 한 블로거의 쓴소리를 소개한다.


“ ... 이 영상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 통일의 부작용을 강조하며, 모든 사회문제를 통일의 부작용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악의적인 번역을 통해 의미를 교묘하게 비틀어 놓습니다. 촬영장소와 인터뷰 대상의 극단적 편향, 인터뷰 내용의 악의적 번역과 편집을 통해 독일이 아직 극단적 통일의 휴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극좌파당인 Die Linke와 관련해, 선거운동하는 곳에 가서 홍보하는 사람 두명에게 인터뷰를 따와 극단적인 내용만을 보여주며 호도하고, 정당대회에서의 연설내용을 보여줍니다. 구 동독지역 주민들이 구 서독지역 주민들 만큼 동등한 일자리와 임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공약을 내세우는 Die Linke의 지지율이 이번 총선에서 상승했다고요. Die Linke는 좌파 중에서도 극좌파입니다. 정당 스스로 자기네 의석이 의회 가장 왼쪽에 있다고 홍보할 지경이니까요. 극좌파 당의, 극좌파 선거홍보도우미들의 홍보인터뷰와, 극좌파당 선거유세장의 정치인 연설을 '다수 의견의 대변'으로 둔갑시킵니다. 중도적인 내용이 아니라 극단적인 내용만 보여주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극단적인 그 내용 외에는 뭐가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것일수록 중요해 보이고, 한쪽 내용은 보여주지 않고 다른 한쪽만 보여주면 그 다른 한쪽 외에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 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선동하는 방법이죠.


단순히 실업률과 경제공황 얘기를 하는 인터뷰 내용도, 그 '실업률'이 일반적인 '실업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동독 지역 주민들의 실업률'이 악화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혹시 최근 경제공황의 발원지인 미국도 구 동독지역이었나요? 그리고 나선 바로 다음 화면으로 지역별 실업률 비교를 합니다. 그렇다고 독일 지역 전체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유독 브란덴부르크와 바이에른을 비교합니다. 네, 구 동독 지역인 브란덴부르크는 실업률이 높고, 구 서독 지역인 바이에른은 실업률이 낮습니다. 하필이면 아무 것도 없는 브란덴부르크를, BMW와 아우디 본사 및 공장을 비롯, 온갖 산업들이 몰려있는 바이에른에 비교하니 당연한 결과죠. 장난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