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관제 민족주의

박상봉 박사 2008. 5. 3. 22:26
 관제 민족주의

2008. 5. 3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숱한 우여곡절 겪으며 봉송되고 있다. 성화 봉송길 곳곳에서는 티베트 폭력 사태를 규탄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올림픽 성화를 지키기 위해 동원된 중국인과 유학생들이 대립했다. 런던에서는 성화를 끄거나 강탈하려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성화 봉송과정에서 35명이 체포됐다. 파리에서는 성화가 세 차례나 꺼졌고 에펠탑에는 5개의 수갑으로 오륜기를 패러디한 현수막이 걸려 중국 정부의 반인권행태를 격렬히 규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두 얼굴

 

    미국과 일본에서 있었던 성화 봉송도 인권단체들의 반대 시위에 부딪치며 올림픽 성화 봉송행사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도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는 이미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의 총리도 동참할 태세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중국 정부에게 티베트 망명정부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 정치적 폭도에 불과하다며 국제사회는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완강히 대응하고 있다.


이런 올림픽 성화 봉송과 충돌은 이미 그 채화과정에서 예견된 바 있다. 지난 3월 24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있었던 채화 행사장에는 「국경없는기자회(RSF)」 메나르 사무총장과 회원 3명이 뛰어들어 “인권을 짓밟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열 수 없다”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방송은 즉시 중단되었고 검은 천으로 만든 올림픽 오륜기는 오륜이 오려진 채 들려있었다.


올림픽 성화 봉송의 어두운 앞날을 품은 채 봉송이 시작됐고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에 이어 지난 27일에는 서울 올림픽 경기장에서 성화 봉송행사가 열렸다. 서울에서의 성화 봉송도 예외가 아니었다. 행사장에는 티베트 지지자와 인권단체 회원들은 물론 6천여명의 중국인과 유학생도 몰려들었다. 이어 충돌이 일어났고 흥분한 중국 유학생들이 돌멩이, 절단기, 물병들을 던지고 오성홍기를 꽂은 깃대로 반대 시위자들을 무차별 찌르는 폭력이 TV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행사를 취재하던 사진 기자 1명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충돌을 막던 전경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성화는 9천여명의 경찰들의 호위를 받아야 했고 정작 올림픽 성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민들은 물론 전 세계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이 행사가 중국 대사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행사 하루 전인 26일에는 중국에서 붉은 색 티셔츠 3만 벌과 오성홍기(五星紅旗) 3만장이 공수되기도 했다. 중국 대사관은 유학생들에게 여비를 지급하며 이들의 참석을 독려했다고 한다. 언론은 중국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를 지탄했고 21세기가 지향하는 열린 민족주의에 반하는 폐쇄된 민족주의에 우려를 드러냈다.


문제는 이런 민족주의가 중국 정부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0년대 중반은 소련 등 동유럽 국가들의 격변이 일던 시기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는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이런 격변의 와중에 사회주의 이념을 하루아침에 상실한 청소년들의 정신적 공허감은 예상 외로 컸다. 청소년들이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가운데 범죄도 급증했다.


청소년 일탈 중 하나가 바로 사회주의 이념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운 민족주의였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증가했고 구시대 유물로 사라졌던 네오나치가 새롭게 둥지를 튼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러시아, 유고 등 구 공산권에서 벌어지는 민족 간 갈등도 그 후유증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관제 민족주의가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바라기는 이런 관제 민족주의가 공산당으로 향할 비판의 화살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중국 공산당의 고도의 전략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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