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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52: 평양의 은덕촌(恩德村)과 동베를린 발트지들룽(Waldsiedlung)

박상봉 박사 2007. 6. 19. 08:39
 

해설52: 평양의 은덕촌(恩德村)과 동베를린 발트지들룽(Waldsiedlung)


평양 대동강변에 위치한 은덕촌이라는 초호화 빌라촌이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은덕을 베풀어 준 주거촌’이라는 은덕촌은 5층짜리 6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여 평에 이르는 각 가구는 방 6개, 화장실 2개를 비롯해 목욕탕, 거실, 식당, 창고 등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은덕촌은 당초 김 위원장의 지시로 1992년 핵 및 미사일 연구원들을 위해 건설됐으나 지금은 현철해, 김명국, 이명수, 박재경 대장 등 군부 실세와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 노동당 및 내각 내 김 위원장의 최측근 30여 명과 그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은덕촌 내 호화 빌라는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인민무력부의 청사 경무부 소속 1개 중대가 요새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얼마 전 김계관 부상이 은덕촌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김 부상은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회동과 6자회담을 통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북한 계좌 동결을 해제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되어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의 은덕으로 만들어진 은덕촌은 과거 동독 동베를린 부근의 반들릿츠의 발트지들룽(Waldsiedlung)이라고 하는 숲속마을과 유사하다. 동독 공산당 특권층의 사치와 안락의 대명사였던 반들릿츠는 호네커 총서기, 슈토프 총리, 밀케 슈타지 총수 등 20여 명의 당 핵심간부들이 안쪽에, 차량기사, 요리사, 정원사, 세탁원, 수영장관리인 등 관리인들이 바깥쪽에 거주했다. 모든 설비는 ‘메이드인 저머니(made in germany)’였고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의 작은 모델을 이곳에 만들어놓은 것 같이 호화스러웠다.


이곳에 거주하는 특권층은 외제승용차는 물론이고 서방세계에서 수입한 물품이 가득한 특수상점을 이용했고 고위직일수록 서방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호네커의 양복은 서독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KaDeWe)에서 구입한 것이었고 속옷은 명품 베아테 우제의 것이었다. 사냥용 차량은 메르체데스 벤츠와 로버 사 제품이었다.


특권층의 생활은 ‘사치’와 ‘안락’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생활이었다. 서방 자본주의의 호화제품들이 즐비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이름 뿐 이었다. 재야인사 볼프 비어만은 “동독이 ‘썩은 노병’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며 공산당 특권층의 표리부동한 행태를 비꼬기도 했다. ‘오늘은 당 간부, 내일은 다시 생산현장으로’라는 이상도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동독의 핵심지도층은 생산노동자 출신들이 많았다. 권력서열 1위 호네커는 기와공이었고 슈토프 총리는 미장공이었다. 당의 창과 방패로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던 밀케는 화물기사 출신이고 당 외화벌이꾼 샬크 골로드코프스키는 제과공이었다. 사통당 후신인 민사당을 창당하고 동독 공산당을 가까스로 건져냈던 그레고르 기지는 소 사육사였다. 호네커 몰락 후 동독을 지켜내려 했던 작센 지방의 존경받던 개혁공산주의자 모드로브 총리도 열쇠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노동자의 삶을 등진 채 권력이 제공하는 사치와 안락에 탐닉했다. 특히 이들 권력층의 호화로운 생활은 물질적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위에 군림했던 모습 속에서 더 잘 드러났다. 발트지들룽에 거주하며 특권층을 돌보던 640여명은 오직 이들의 수족과도 같이 충성을 맹세하며 상관들을 섬겼다. 정원을 다듬고 별난 요리들을 제공했고 자동차와 수영장을 관리했다. 외곽에 거주하며 경비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권층만의 별천지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름대로 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김정일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 씨가 메르체데스 벤츠를 하사받고 떵떵거리며 살던 것과 비슷하다.


평균 64세나 되었던 핵심권력층은 월요데모가 일어나고 탈출자들이 생겨나도 현실에 무감각했다. 동독이 몰락할 상황에서도 고급관료들에게 상납된 금시계가 213개나 달했다고 한다. 호네커가 권력을 잃고 ‘발트지들룽’을 떠나서 세상 밖을 산책하게 되었을 때 호네커 부부는 최초로 목격한 동독의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호네커는 자신이 권력에서 축출된 후 후임자였던 크렌츠에 대해 “에곤 크렌츠가 권좌에 오른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는 웃지 못 할 명언을 남겼다.


이렇듯 동독 공산주의 권력은 이론과 실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은덕촌과 발트지들룽은 공산권력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회주의 내 명품관이다. 하지만 그 명품관에는 그들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서방 세계의 호화 사치품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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