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해설50: 이종석 전 장관의 왕따

박상봉 박사 2007. 5. 31. 09:28
 

해설50: 이종석 전 장관의 왕따


경의선 동해선 열차가 반세기만에 군사분계선을 갈랐다. 하지만 행사는 ‘주면서도 눈치 보는’ 비정상적인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는 지적이다. 북은 입맛에 맞는 인사에만 ‘귀하신 분들’이라며 호의를 베풀었다. 반면 비위를 거스른 인사들에 대해서는 ‘까칠한’ 태도를 보이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반세기 만의 빅 이벤트에 초청장을 받은 정치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 있는 호기를 활용하려는 듯 일부 과장된 행동을 보여 쓴웃음을 자아냈다. (뉴스앤피플)


이종석은 노무현 정권 초기부터 3년 8개월 간 NSC 사무차장과 상임위원장 그리고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국가 안보와 대북관계를 총괄하던 장본인이다. 이 기간 동안 이종석 전 장관은 지나친 친북 유화정책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북한 퍼주기라는 말도 이 장관이 재직하던 시절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대북관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은 아니더라도 북한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북한에 동정적이었다.


그의 대북관은 재독 학자 송두율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사회는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론을 주장하며 탈북자 문제를 비롯해 정치범 수용소, 김일성 김정일의 세습독재, 북한의 인권침해와 같은 비인도적 행동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 전 장관은 노무현 정권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사무차장으로 재직하며 우리 외교 안보의 기본 축을 한미동맹 중심에서 ‘남북 민족끼리 공조체제’로 전환시켰다. 이후 외교·안보정책 수립과정은 이종석을 중심으로 한 자주파의 일방 독주였다. 북한 내부 급변 사태 때 한미연합사의 공동대응 방안을 담으려 했던 ‘작전계획 5029’도 그의 반대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사사건건 반대와 대립으로 반세기 한미동맹이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중앙대 J 모 교수는 “지난 3년간 NSC사무처는 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로서 친북 성향의 대북정책을 추진했고, 그 중심에 이종석 차장이 위치하고 있었다”면서 “문제만 일으키고 책임을 안지는 자가 통일부 장관과 동시에 NSC상임위원장을 겸직해서는 안된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야당의 한 의원은 세작이라는 표현 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종석의 친북성향은 대학 시절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파간첩으로 붙잡힌 후 위장으로 전향을 했던 김남식이 운영한 ‘독립문써클’ 회원이었다. 그리고 세종연구소 이사장 임동원의 도움으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공직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전 장관의 주장은 현실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현대사를 만들고 있는 북한에 대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허구 속에 만들어진 북한의 민족, 자주, 평화라는 구호에 젊은이들은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허구는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펴져나갔다.

공직에 오르기까지 외국을 거의 여행해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통일부장관에 있으며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미공조를 둘러싸고 갈등을 보이던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밀어냈으며, 휴전선에 있었던 대북확성기를 철거하도록 했다. 군장성급 강연회에서 북한에 적개심을 고취하지 말도록 하고 북한을 주적으로 대하지 말도록 강요해 무리를 빚기도 했다.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불참하거나 기권하도록 한 것도 이종석 전장관의 입김이었다. 그는 또한 통일부장관 취임이후 북한이나 금강산을 방문하는 친북단체에게 국가예산으로 후원하는 등 각종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북교류협력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단체들의 방북을 유도해 불투명한 돈들이 북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렇듯 이 전 장관의 편향적 대북관의 결과, 북한은 엄청난 재정이 드는 미사일과 핵 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음을 부인하지 없을 것이다. 이런 구세주와 같은 이종석 전 장관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싸늘하고 차갑다고 한다. 지난 5월 17일 경의선 철도 내에서의 풍경은 가관이었다는 후문입니다. 탑승자들이 너도 나도 북한의 비위 맞추기에 안달이 난 가운데 리영희 교수는 “20~30년간 내가 길러낸 후배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며 호기를 떨기도 했다는 것이다.

명계남 씨는 남측 공동취재단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은 채 북측 인사들과는 쾌활하게 대화를 나누어 “북한에만 친절한 계남씨”라는 빈축을 샀다고 한다.


다른 이들도 내각책임참사라고 하는 불투명한 인물인 권호웅(국장급?) 경의선 북측대표단장에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 다소 오버액션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는 완전 성공한 것이다. 권 단장은 리영희, 한완상 등에게는 과도하게 친절했던 반면, 이종석에게는 눈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 장관과 마주 앉도록 돼 있던 북측 인사들도 모두 자리를 비워 이 장관은 외톨이였다는 것이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북한의 행태, 그리고 여기에 장단 맞추는 남한의 인사들, 국민은 차치하고라도 더 이상 당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충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07. 5. 26)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