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나리오

대한민국의 미래

박상봉 박사 2007. 1. 10. 10:57
 

대한민국의 미래


분명한 것은 우리가 통일을 회피한다면 어떤 나라도 우리에게 통일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해 10월 9일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자 주변 강대국들의 태도가 차츰 구체화되고 있다. 유엔 대북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가운데 미국, 중국 및 일본의 자국 이익 챙기기가 본격화되었다. 이것은 북한의 미래, 나아가서 한반도의 미래가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기에는 상당한 요소들이 극복되어야 할 것임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통일을 회피한다면 어떤 나라도 우리에게 통일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핵 실험을 계기로 주변국들의 의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과 같이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챙겨야할 국익은 과연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나 자주와 같은 실체가 불분명한 목표에 만족한다면 한반도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다.


독일의 통일외교

통일은 결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한반도 상황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가들이 우리의 통일에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며 통일의 기회를 잡은 서독은 적극적인 통일외교를 전개해 통일을 성사시켰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은 유럽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미국에게도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전쟁을 2차례나 일으키고 수백만 인명을 학살했던 나치의 만행을 단죄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4개 전승국은 패전국 독일을 분할 점령한 가운데 독일을 영원히 분단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독일은 뭉치면 전쟁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승국에 이어 유럽 전체 그리고 이웃 폴란드도 절대적으로 반대했던 독일통일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냉전 이후 역사가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적극 붙잡았던 서독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이 노력을 통일외교로 칭한다.


통일외교의 제1은 헝가리 정부를 설득해 대(對)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토록 한 것이다. 동독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승리한 이 사건으로 2달 간 무려 2만 4천여명이 이 통로를 경유해 서독 땅을 밟았다.


통일외교의 제2는 미국을 외교의 축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독일에 대한 영토적 지배와 물리적 피해의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은 미국은 비교적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라이프치히 월요데모가 확산되어 동독 전체 도시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시위현장을 바라본 미국은 동독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했다.

어차피 동독의 회생이 불가능한데 서독의 뜻대로 독일문제는 독일민족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동의해 주는 것이 손해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급변하는 동독의 사태에 대해 매일 부시 대통령과 통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독 주재 미국대사로부터 동독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 들은 부시는 결국 독일문제는 독일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며 서독의 주도권을 인정해 주었다.


통일외교의 제3은 소련의 개혁 개방을 적극 지원했다는 데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고 하는 개방 개혁 노선을 내걸고 권력을 잡은 고르바초프는 국내 보수 공산권력과의 갈등을 빚고 있었고 서독 정부는 막강한 자금으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을 도와주었다. 또한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말타회담을 제의해 소련과의 군축과 평화 무드를 조성해 주었다.


통일외교의 제4는 영국과 프랑스의 비판에 적극 대처하고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데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독일통일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 붕괴 후인 1989년 12월 20일 동독을 방문하고 돌아와 독일 통일은 거스릴 수 없는 대세라는 입장을 보이자 “미테랑이 정신분열을 일으켰다”고 할 정도였다.

미국에 이어 소련이 독일의 자율성을 인정한다고 하자 모스크바로 달려가 고르바초프에게 이를 재차 확인하였다. 고르바초프의 진의를 확인한 대처는 동독의 몰락으로 독일이 통일될 것으로 판단 통일된 독일이 나토에 잔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통일외교의 제5는 폴란드의 오더 나이스 국경을 인정한데 있다. 나치의 침공을 받았던 폴란드는 늘 강한 독일의 피해자였다. 독일이 통일된다면 또 다시 과거 영토에 집착하게 될 것을 우려한 폴란드는 현 독일과의 국경인 오더 나이스 강을 공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이런 폴란드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독일통일은 유럽의 평화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것임을 강력히 천명했다.


통일의 전제

통일외교를 통해 독일 주권을 회복하고 통일의 기회를 포착한 독일은 이웃과 국제사회에 대해 몇가지 중요한 약속을 통일의 전제로 제시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은

첫째, 통일된 군대는 37만명을 넘지 않는다.

둘째, 폴란드와의 국경인 오더 나이스 국경을 인정한다.

셋째, 통일된 독일은 핵, 생물, 화학 무기를 만들고 보유하지 않는다.

넷째, 통일독일은 나토에 잔류한다. 등이다.


통일조선

통일이야말로 21세기 역사적 과제이자 우리가 추구해야할 최대의 국익이다. 동북아 평화를 구실로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시간을 두고 북한에 친중정권을 수립하려는 중국,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에 ‘통일조선’을 세우려는 중국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 통일조선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 북한에 친중정권을 수립하고 친중정권으로 하여금 남한과 통일협상을 추진해 통일을 이룬다는 시나리오다. 통일한국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통일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는 반면, 통일조선은 중국의 체제와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다.-


통일이 기회인 것은 바로 이런 중국의 한반도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일본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 한 통일을 도와줄 처지가 아니다. 향후 50년 앞만 내다보더라도 통일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임을 알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 고령화 추세라면 2100년이 안돼 우리나라 인구는 3천만 내지 3천5백만명에 불과할 것이다. 4천만명이 채 안되는 인구로 한미동맹은 약화되고 강대국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통일에 부정적인 이유들을 나열하고 국민으로부터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하는 한 통일의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통일된 한국이 200만 조선족과 50만 고려인과 더불어 만주와 시베리아를 우리의 일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통일의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탈북자 10만명만 들어와도 남한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엄살을 떨며 통일의 기회를 무산시키려는 세력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맡겨서는 안된다. 서독의 경우 분단 이후 매년 평균 20만명의 동독인을 수용했으며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도 매년 평균 2만명의 동독주민을 서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독 경제는 성장을 지속했고 서독인들은 근검절약해가며 국가적 과제를 성실히 담당해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통일은 감당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사안이 아니라, 국민이 어떤 태도와 각오로 통일에 임하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통일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확대하기 보다 통일이 가져다줄 국가이익과 가능성을 확대해 통일된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책임있는 지도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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