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분단극복

통일의 최대고비 : 독⋅소 코카서스 정상회담(Gipfeltreffen)

박상봉 박사 2015. 6. 17. 12:25

 통일의 최대고비 : 독⋅소 코카서스 정상회담(Gipfeltreffen)

 

독일 통일의 최대 난제는 무엇보다 소련의 벽을 어떻게 넘느냐는 것이었다. 콜 정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과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전환을 처음부터 지지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개혁·개방은 기존 공산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순조롭지 않았다. 반란이 일어나고 고르바초프가 고립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콜 총리는 이런 고르바초프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제동이 걸릴 위기 때마다 콜은 늘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독이 급변사태를 맞아 공산정권이 무너져 내리자 콜은 대소외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겐셔 외무장관은 물론 콜 총리도 수시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에 힘을 보태줌과 동시에 독일 문제에 대한 소련의 이해를 적극 구해 나갔다. 이런 가운데 1990년 7월 16일 독소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동독에 민주정권이 수립되고 통일협상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가운데 소련의 지지를 얻기 위한 회담이 합의된 것이다. 

코카서스 정상회담은 아래 8개항을 합의하고 마무리되었다. 독일과 소련, 양국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회담이었다. 독일은 이 회담이 성사된 지 3개월이 채 안되어 통일을 이루어냈다. 다음은 8개항 합의사항이다.


∇ 첫째, 독일 통일은 서독, 동독 및 베를린 시를 대상으로 한다.

∇ 둘째, 통일과 함께 독일에 대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 전승국의 권리와 책임은 완전 소멸된다. 독일은 통일 시점을 기해 주권을 완전히 회복한다.

∇ 셋째, 통일된 독일은 국가의 무제한적 주권을 행사하며 동맹 가담과 관련해 독자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 선언은 유럽안보협력협의회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서독정부는 통일된 독일이 북대서양동맹(NATO)에 잔류하기 원하며 동독정부도 이에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

∇ 넷째, 통일된 독일은 소련 정부와 소련군의 동독 철수에 관해 조약을 체결하기로 한다. 동독 주둔 소련군은 3년-4년 과도기 내에 철수한다. 또한 독·소 양국은 동독에 서독 마르크화 도입을 위한 과도기 조약을 체결한다.

∇ 다섯째, 소련군이 동독 영토에 잔류하고 있는 한 나토 동맹의 동독 확대는 불가하다. 이에 따라 나토 조약 제5조와 6조(나토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인정하고 공동의 대응조치를 취한 다는 조항)은 불변한다. 서독 연방군은 통일과 동시에 동독과 베를린에 주둔한다.

∇ 여섯째, 동독 영토에 소련군이 잔류하는 한 미영불 3개 연합군은 통일 후라도 서베를린에 주둔한다. 서독 정부는 연합국에 이를 요청하고 각국 정부와 관련 조약을 체결한다.

∇ 일곱째, 서독 정부는 진행 중인 빈(Wien) 회담(당시 독일문제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통일된 독일의 군대를 3- 4년 내에 37만 명으로 감축한다는 의무사항을 공표한다. 군대 감축은 빈 협정의 발효와 함께 실행에 들어간다.

∇ 여덟째, 통일된 독일은 핵, 화학, 생물무기(ABC-Waffen) 제조, 보유 및 처리를 포기하고 비확산 조약(NPT) 회원국으로 남는다.


독일은 통일을 쟁취한 대가로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항을 두었다. 이 외에도 독일은 폴란드와의 국경인 오더(Oder) 나이스(Neiss) 국경을 문제시 삼지 않을 것도 공개적으로 확인해주었다. 이 런 서독 콜 총리의 성실한 노력에 고르바초프는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고르바초프는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독일인이 좋아하는 최고의 인물로 남아있다. 고르비의 부인 라이샤 여사가 암으로 투병할 때는 서독으로 초대해 최상의 치료로 돌봐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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