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친화적 환경

통일대박, 언론 아마추어리즘으론 불가능

박상봉 박사 2014. 3. 24. 07:53

 

D 신문의 콜 총리 드레스덴 연설 보도 유감

 

콜 총리의 드레스덴 연설은 20세기 말 독일 미래를 가늠하는 역사적 연설이었다. 전범국의 오명을 씻고 동독 급변사태를 극복, 꿈에나 가능했던 통일을 거머쥘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역사적 자리였다. 워싱턴, 런던, 파리, 모스크바는 연설의 자구 하나하나까지도 철저히 체크할 자세였다. 이 연설로 유럽 주변국의 대독일 이미지가 결정될 자리였고 무혈혁명을 만들어가는 동독동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할 무거운 자리였다. 콜 총리는 드레스덴 연설을 “내 생애 가장 어렵고 중요한 연설”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2014년 3월 22일 D지는 박근혜 대통령 방독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방독 중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을 찾아 통일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드레스덴은 헬무트 콜 총리가 1989년 12월 19일 생애 최고의 연설을 한 곳이다.

드레스덴 연설이 이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헬무트(Helmut)” “우리는 하나의 민족(Wir sind ein Volk!)”를 외치며 모여든 수 만명의 동독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으며 또한 워싱턴, 파리, 런던, 모스크바 등 전 세계가 연설의 글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D지는 드레스덴 연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프라우엔키르헤 교회의 폐허 돌무더기 앞에서 연설에 나선 콜 총리는 “역사적 순간이 그것을 허용한다면 저의 목표는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고 했다. 독일 통일에 대한 의지를 동독 땅에서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다』

사실 보도에 충실해야할 신문이 소설을 쓴 꼴이다. 현장을 다녀오지 않은 기사와 같다. 물론 결과적으로 드레스덴 연설은 통일의 초석을 놓은 연설이었다. 하지만 당시 서독은 통일을 거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미, 영, 프, 소련은 물론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래 독일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 내 손에는 콜 총리의 드레스덴 연설 전문이 들려있다. 그 어느 곳에도 통일이라는 단어는 없다. 연설의 핵심은 평화, 자유, 그리고 민족 자결권이었다. 통일을 거론하지 않고 통일의 초석을 세웠던 드레스덴의 연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크다.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