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도 막바지다. 새 정부가 구성되고 향후 5년을 이끌어갈 국정계획과 방향이 결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첫 단추는 정부조직에 대한 개편이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축소되고 업무가 중복된 부서의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통일부는 외교부에 흡수되는 것으로 윤곽이 드러나 지난 10년 대북정책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빈 수레만 요란했던 통일부의 자승자박이다.
전통적으로 1월은 대북관련 뉴스가 유난히 많았다. 무엇보다도 지금으로부터 40년전 1월은 1950년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했던 위기의 때였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김일성의 특명을 받고 남파되었다.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의 목을 따오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실패로 끝났고 남파 대원 31명 중 1명은 북으로 도주하고 1명은 생포되었다.
도주했던 1명은 북한 인민군 대장으로 총정치국 부총국장이 되어 2000년 9월 김정일의 특사로 남한을 방문했던 김용순을 수행해 송이버섯을 전달했던 인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에서 1.21사태 관련자들을 모두 숙청했다고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생포됐던 1명은 김신조로 남한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1.21사태가 실패로 끝나고 여론이 들끓자 북한은 이틀 후인 1월 23일 공해상에 있던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당일 오후 1시 45분 동해 공해상에 4척의 북한 해군 초계함정과 2대의 미그기가 나타나 푸에블로호를 납치했다. 장교 6명과 해군 75명, 민간인 2명을 포함하여 총 83명이 탄 푸에블로호는 납치 당시 북한 원산항으로부터 40km 떨어진 공해상(公海上)에 있었다.
수년 전 이 사건을 둘러싸고 두 가지 배후설이 제기되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미국 독일역사 연구소(German History Institute)의 번트 쉐이퍼 연구원의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대북전략 전문가인 제임스 줌왈트의 주장이었다.
쉐이퍼는 독일 통일 후 비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근거로 지난 2004년 ’북한의 모험주의와 중국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쉐이퍼 연구원은 이 보고서에서 북한이 1월 21일 무장 유격대 31명을 서울에 침투시킨 사태가 실패로 끝나자,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그 이틀 뒤인 23일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쉐이퍼 연구원은 북한은 1.21 사태가 성공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을 경우, 남한에서 군사정변이나 민중봉기가 일어나면, 반독재 정변을 돕는다는 빌미로 남한에 인민군을 파견해 통일을 하려고 오랫동안 계획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미 해병 중령 출신으로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대북전략가 제임스 줌왈트는 2006년 초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것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북한 조종사들이 미군과의 공중전에서 참패, 체면이 크게 손상됨에 따라 이를 보상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줌왈트는 북베트남군 조종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이 1967년초 북한 조종사들을 베트남전에 참전시켜 미군과 싸우게 해달라며 압력을 넣었고 북베트남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전투기들은 미국 조종사들과의 접전에서 모두 격추당하고 말았다. 자존심을 크게 상한 김일성은 복수심을 불태웠고 손쉬운 먹잇감을 조심스럽게 찾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정보함으로 50밀리 기관포 1정만 갖고있던 푸에블로호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40년 만에 재현되는 이런 논란을 접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남한을 접수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북한의 세습권력의 실체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
이런 가운데 당시 생포됐던 김신조 씨가 무자년 새해 40년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북한을 진정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돈과 물자만을 지원해서는 안 되며 북한에 자유민주주의를 경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고희를 바라보고 있는 분단 최대의 희생자의 고언이라 생각된다. 그렇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는 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화는 모든 대북정책이나 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임과 동시에 그것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I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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