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 이해 오해

독일통일 17주년

박상봉 박사 2007. 10. 9. 16:19
  독일통일 17주년

 

독일의 제2공영방송 ZDF는 매년 통일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올해로 통일 17주년을 맞는 독일사회가 통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Deutsche Einheit (독일통일) 

 

통일, 동독주민 84% 서독주민 78% 찬성

 올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독일인들은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영방송 ZDF에 따르면 17년 전의 이루어졌던 통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전체 독일인의 79%가 찬성, 17% 반대 그리고 4%가 기권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에 실시했던 결과보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사람이 약간 증가했을 뿐 총체적으로 통일에 대해 옳았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물론 출신별로는 통일을 둘러싸고 약간의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독출신들의 84%가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서독의 경우는 78%에 달했다. 서독인이 느끼는 부정적인 견해는 통일 후 부담하고 있는 단결세(Solidaritaetszuschlag), 동독 지원금 등 각종 부담금들로 인한 것이며 동독인들은 아직도 서독에 비해 경제적인 낙후와 불평등 등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참고적으로 작년 여론조사는 동독인 92%, 서독인 84%가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물론 작년 조사에 비하면 긍정적 평가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아직도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출신을 불문하고 통일에 대해 긍정적이다.


통일 17주년을 맞는 올해는 통일 이후 최저의 실업률을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통일 직후 5백만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가 올해에는 354만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동독과 서독의 실업률은 전자가 후자의 거의 2배에 달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경제적 여건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여기고 있는 독일인들은 동서 간의 이러한 상대적 격차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과거 동독 공산당(SED)의 후신인 민사당(PDS)은 이런 불만을 극대화해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10월 3일 통일의 날은 '기쁨의 날(Tag der Freude)'로 그간 동독경제의 획기적인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말했다. 과거 암울했던 동독의 도시들이 새롭게 단장되어 빛을 발하고 있고 오염투성이의 환경이 되살아나고 있으며 국민들의 건강 보건지수가 획기적으로 나아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도다 경쟁력을 갖춘 핵심 기업들이 신기술이 접목된 신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해결과제


물론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국가채무, 아직도 높은 실업률, 동서독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완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5.5%에 달하는 단결세 존속여부를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단결세는 1990년 통일 후 통일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도입한 세원으로 해마다 평균 110억 유로를 거둬들여 비용에 충당해 왔다.


동독인들이 아직도 느끼고 있는 이질감은 또 하나의 암적 요소이다. 일부 서독주민들은 서독의 경제적 지원을 무작정 원하는 행태야 말로 사회주의에서 길들여진 공짜인생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적지 않은 동독인들은 통일된 한나라에서 출신에 따라 경제적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음을 서운하게 여기고 있다.


카르스텐 상원의장은 동서독 주민들에게 서로의 성과와 업적을 상호 인정해 주는 포용과 관용을 강조했다. 통일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낸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자부심을 갖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자유, 자신과 미래의 열쇠


통일 17주년을 맞아 축사에 나선 메르켈 총리는 자유의 사상은 어떤 위협과 어려움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을 강조하고 자유야말로 자신은 물론이고 독일의 미래를 지켜줄 결정적인 열쇠임을 역설했다. 자유의 힘이 있어 미래도 정의가 보장되고 협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그녀는 1954년 함부르크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였다. 태어나서 몇 주가 안 돼 메르켈은 부모님과 함께 구동독으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베를린-브란덴브르크의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은 목사관에서 살았으며, 냉전 상황의 동독의 특징상 목회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989년 동독 혼란기에 메르켈은 민주봉기(Deutscher Aufbruch)라고 하는 재야단체에 들어가 동독 최초 자유선거에 의해 총리가 된 드메지어 정부에서 대변인을 맡았다. 1991년 1월 헬무트 콜 정부 하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을 역임하여 통일된 독일에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기민당 대표, 2005년 11월 22일 제8대 독일 총리로 선출되어 강력한 독일을 건설하고 있다.


평생을 자유의 사각지대에서 지내며 끼와 능력을 눌러왔던 메르켈에게 통일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녀는 자유의 전도사가 되었고 자유의 힘이 이제 그녀의 잠재되었던 능력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그녀는 물론이고 독일 사회의 정의도 자유의 힘으로부터 나옴을 그녀는 삶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메르켈과 독일 통일을 바라보며 우리에게는 과연 통일과 관련해 어떤 철학이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혹시 ‘민족끼리’ 라는 닫힌 민족주의가 모든 가치와 철학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이런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