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헬무트 콜과 에곤 바

박상봉 박사 2016. 10. 12. 10:22

헬무트 콜 & 에곤 바

 

 

- 2012년 82세 콜의 모습 -

 

헬무트 콜(Helmut Kohl)은 통일총리다. 콜은 당시 많은 대내외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시 대내외 정세는 통일과는 전혀 무관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전범국이 감히 통일을 거론해서는 안될 것 같았던 분위기였다. 통일을 주장하는 것은 유럽의 안보를 해치고 동독과의 평화적인 공존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특히 사민당 소속 정치인들이 통일논의에 '소금'을 뿌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기획한 에곤 바(Egon Bahr)였다. 그는 1988년 11월 27일,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기 1년여 전에 다음과 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독일의 분단극복을 거론할 경우 유럽의 미래는 혼돈에 빠질 것이다. 독일은 분단의 여건 속에서 여러 기회를 누리고 있으며 동서독 통일의 기회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에곤 바를 존경하는 김영희 기자는 이런 역사로 부터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   


게어하르트 슈뢰더의 발언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역시 1989년 5월 11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져 내리기 6개월 전에 "동서독의 통합인 재통일과 같은 역사적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Meine Position....ist die, dass ich nicht glaube..... dass das Beschwoeren einer Wiedervereinigung, gedacht als das einfach zusammenfuehren der beiden deutschen Staaten, eine historische Chance fuer uns ist."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뿌리치고 헬무트 콜 총리는 역사의 기회를 붙잡고 기적과 같은 통일을 이루어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햇볕정책의 썩은 뿌리를 부여잡고 '대화'를 부르짖는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이 있다. 역사는 실수를 인정한 자에게 보상도 따른다고 교훈하고 있다. 게어하르트 슈뢰더는 1998년 총리에 선출된 후 사민당의 기조와 다른 노동개혁을 추진해 통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도약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