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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트는 언론의 자유 - “림진강” 소속 5명의 기자

박상봉 박사 2010. 6. 22. 14:07

정보의 밀반출

싹트는 언론의 자유 - “림진강” 소속 5명의 기자

 

 2009년 12월 28일 슈피겔(Der Spiegel)과 쌍벽을 이루는 시사 주간지 포커스(Focus)는 정보밀수라는 제목의 북한 뉴스를 보도했다. 수잔네 슈테펜(Susanne Steffen) 기자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실과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찾았다.  - 위드(IUED)는 시간이 지났지만 사안의 중요도가 커 그 내용을 번역해 싣는다 -

                              

                                                                       림진강표여:  북한을 알자, 북한을 기록하자, 

                                                             북한사람과 대화하자

 

  잡지 “림진강” 소속 5명의 기자가 활동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 기자의 주 취재 대상은 북한 내부에 만연된 부정 부패, 군인들의 허기진 삶, 주민들의 핵에 대한 인식 등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다. 친애하는 동지 김정일의 폐쇄된 제국에 언론의 자유는 없다.  스파이 혐의는 곧바로 죽음이다.  5명의 기자들은 몰래 카메라로 이런 실상들을 담아 중국으로 밀반출한다.  국경에는 잡지사 편집장인 지로 이시마루가 기다리고 있다.  비밀 동영상을 받아 챙긴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기자들로 부터 전화를 받으면 지체없이 다음 비행기 편으로 북중 국경으로 향한다.  이 국경에서 편집장과 기자가 만난다.  필름을 확인하고 내용에 관해 세세한 대화가 오간다. 이번에는 국가 소유 건물의 불법 거래를 비밀리에 취재했다.  얼마 전 공장 관리인이 편법으로 확보한 공공 건물을 환원시키지 말아달라며 감독관을 매수하는 현장을 필름에 담았다. 

곧 이어 기자는 다시 국경 넘어 북한으로 사라졌다. 호주머니에는 다음 취재를 위한 자금이 들어 있다. 이시마루 편집장은 건네받은 필름을 챙겨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림진강”의 다음 호를 만든다.


림진강, 북한에서 남한으로 흐르는 강이다.  림진강은 이런 북한 소식을 담아 일본과 남한에서 이미 3호를 발행했다. 이시마루는 때로는 몇 개월 동안 잡지사 기자들과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감시가 점점 심해져 신변안전 때문에 이 일은 임시로 쉬는 기자들이 있다.  또한 때로는 이 기자들이 이시마루 편집장이 전혀 모르는 기자를 새롭게 영입하기도 한다.


이준 기자는 공식 상 단순 노동자다. 그는 국경을 넘나드는 이에 대해 상사에게 가욋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사회 전체가 워낙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 핑계는 많은 기관원들도 이해한다.  그러나 뇌물이 필요하다.  기자가 거주지를 떠나 국경을 여행하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한데 물론 현찰 박치기다.

 

편집장 이시마루와 만남

 

이준 기자는 지난 90년대 말 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아로 부친과 아내가 바라 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는 중국에서 수년 동안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지냈다.  북한과 비교해서 비교적 돈도 잘 벌었다.

 

그러던 중 2002년 우연히 일본 텔레비전 저널리스트인 이시마루를 만난다.  당시 이시마루는 국경부근에서 탈북자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이 기자는 이시마루 편집장에게 몇 시간에 걸쳐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보고, 북한의 개혁을 위해 언론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도 알게 되었다.  번개처럼 아이디어가 스쳤다. 자기 스스로 기자가 되어 북한 내 최초의 자유 미디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사명감을 품고 이준은 북한으로 돌아가 “림진강”을 위해 일하기로 했다.  이준은 절친과 이시마루에게 “나는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횃불이 될 것”이라며 비밀리에 북한에 잠입했다.  당국에 자수를 하고 선처를 구했다.  역시 돈뭉치 덕택에 2, 3 주만에 탈북 조사가 중단되고 이준은 형을 받지 않았다.  노동자로서 일하며 최초의 북한 잠복 저널리스트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이시마루는 중국에서 또 다른 기자들을 채용했다. 이들은 대부분 장비와 자금을 갖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했다. 그러나 몇몇은 돌아와 이준 기자처럼 귀향해 비밀리에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두려워 가족과도 조우하지 않는다. 기자가 발각될 경우 가족은 그 사실을 알았던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협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시마루는 이 기자의 정확한 이름도 개인적 정보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 기자에 따르면 비밀취재는 점점 힘들어진다. 대규모 기아사태가 있었던 90년대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비밀리에 국경을 넘곤 했다. 당시에는 이시마루 편집장도 직접 위조 여권을 갖고 북한 땅을 밟았다. 이시마루는 “이제 대량탈북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중국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국경수비대는 휴대폰 탐지기계를 소지하고 있다. 이시마루는 “소속 기자들과 전화통화를 해야 할 때면 몇 분 간격으로 전화를 끊고 자리를 이동한다”고 전한다. 그러는 사이 이제 더 이상 여행증명서 없이는 고향을 떠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기자들의 비밀취재로 열리는 북한 사회

 

기자들은 몰래 카메라로 시장 아줌마. 당 요원, 노동자 및 군인과 대화하는 것을 담는다. 김정일의 핵 개발에 대해 당 하부요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 고향 친지를 수소문한다. 그리고 지역 기관원을 방문한다. 술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최근의 핵실험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핵은 특수 무기라며 한두 잔 들이마시고는 이것저것 주변을 떤다. 땅 깊숙이 파묻혀 있고 폭발력은 아주 강력해 지하로 태평양을 관통할 것이란다.


오늘날 이런 일을 림진강 기자들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이시마루에 따르면 한 NGO단체가 북한 내 협력자에게 카메라 장비를 갖춰 핵시설이 있는 장소로 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협력자들이 체포되기도 했단다. 카메라에 국가 기밀이라도 들어있다면 수용소에 보내지고 거의 귀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시마루는 이런 기밀들만 정보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기자들이 몰래 카메라로 일상의 생활을 촬영했을 경우에는 2, 3년 형이다.

  

이시마루는 기자들에게 촬영해야할 것들을 미리 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만나서 대화 중에 외부의 세계는 북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고, 일본, 미국, 유럽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보이는지 이야기해 주며 “그들이 기자이지 나는 지원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다.  


이시마루는 기자들에게 촬영기술을 가르친다. 몰래 카메라로 좋은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영상의 대본은 중국어로 쓴다. 북한말로 쓰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발각되면 간첩 협의다. 번역을 해서 잡지는 일본어와 한글로 인쇄된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국에 판매된 필름대금을 받아 잡지 발행 비용을 충당한다.

  

이 기자는 “림진강”이 발행될 때 마다 자랑스러운 한편, 이제는 북한인들을 위한 잡지가 발행되어야 한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림진강은 외국 미디어들에게 핵 발전기, 김정일 건강상태 및 후계자루머와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일상의 삶을 통해 정권의 분위기를 읽어내며 의상 트렌드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기자들은 논에서 일하는 군인들을 항상 만난다. 시장관리인은 고위 관리들이 때마다 군 비축식량을 빼내어 현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군대 내 부패는 이미 일상화 되었다. 이시마루는 “장마당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생필품이 넘쳐나는데 젊은 군인들은 현찰이 없어 아무것도 살 수 없다”고 전한다. 국가 배급제가 붕괴 직전이란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개혁이 아니라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당국은 거래 규모를 줄이기 위해 개장시간을 줄이려 한다. 생필품 운반용 차량도 점점 줄어든다. 한 시장상인은 기자에게 기차역무원이 노인들에게서 쌀자루를 빼앗는다는 사실을 알린다.

 

북한 변화  - 주민들의 뜻

 

“아마도 3, 4년 내에 김정일 정권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시마루는 말한다. 북한은 갈림길에 서있다. 주민들은 변화를 원한다. 기자들이 만나본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더욱이 이시마루는 정권의 붕괴가 북한 내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주민들을 먹일 식량은 없어도 무기 구입에는 돈을 쓴다.


이시마루는 노동당 젊은 세대들이 노를 넘겨받아 중국식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핵 폐기의 대가로 국제사회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의 새로운 세대,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같은 평화적인 변화를 위해 북한에 기회를 주려한다. "림진강“ 제작팀은 이런 사실들을 북한의 일반주민들과 서구세계에도 알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내년 초에는 잡지의 영문판도 발행할 계획이다. 이미 일본 외무성은 주독자가 되었다. 잡지사는 백악관도 정기 구독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IUED

 

NORDKOREA

Die Nachrichten-Schmuggler

Sie riskieren ihr Leben für Wahrheit und Wandel: wie Undercover-Reporter aus dem Alltag im Reich des Diktators Kim Jong Il berichten

Von FOCUS-Autorin Susanne Steffen 2009.12.28

 

Mitten in der Nacht klingelt Jiro Ishimarus Handy. Es ist ein Anruf des nordkoreanischen Reporters Lee Jun, der direkt vor der Grenze zu China steht. Im Gepäck hat er Speicherchips mit mehreren Stunden Videomaterial und heimlich aufgezeichneten Gesprächen mit Arbeitern, Soldaten und Funktionären. Er muss noch einen Grenzposten bestechen. Wenn alles gutgeht, wird er in ein paar Tagen durch das brusttiefe Wasser des Grenzflusses waten und seine Recherchen – versteckt in einem Berg vermeintlicher Schmuggelware – außer Landes schleusen. 

 

Gefragt von susumu Lee Jun ist einer von fünf nordkoreanischen Journalisten, die seit knapp zwei Jahren für das Magazin „Rimjin-Gang“ aus ihrer geschundenen Heimat berichten. Sie schreiben über Korruption, hungernde Soldaten und darüber, was das Volk von Nordkoreas Atomambitionen weiß. Es ist eine lebensgefährliche Arbeit. Pressefreiheit gibt es im abgeschotteten Reich des „Lieben Führers“ Kim Jong Il nicht. Bei Spionage droht der Tod. Die Reporter drehen mit versteckten Kameras, schmuggeln das Material über den Grenzfluss nach China und übergeben es dort Jiro Ishimaru, dem japanischen Redaktionsleiter des Magazins.

 

Der hat sich nach Lees nächtlichem Anruf sofort ins nächste Flugzeug gesetzt. Auf der chinesischen Seite der Grenze zu Nordkorea treffen die beiden Männer aufeinander, sichten das Material und besprechen jedes Detail der Recherche.

Dieses Mal hat Lee den illegalen Immobilienhandel mit staatlichen Gebäuden dokumentiert. Er war dabei, als ein Fabrikleiter einen Kontrolleur bestach, um das offiziell staatseigene Haus, das er gerade unrechtmäßig erworben hatte, nicht wieder räumen zu müssen.


Später verschwindet der Undercover-Journalist wieder über die Grenze nach Nordkorea – ausgestattet mit Spesengeld für seine nächste Recherche. Aus Lees Berichten und Filmen macht Redaktionsleiter Ishimaru im japanischen Osaka eine neue Ausgabe von „Rimjin-Gang“.

Rimjin-Gang – so heißt ein Fluss, der von Nord- nach Südkorea fließt. In Japan und Südkorea ist das Magazin mit den Alltagsgeschichten aus der bizarren 1-Parteien-Diktatur bereits dreimal erschienen. „Ich habe oft monatelang keinen Kontakt zu meinen Reportern“, erzählt Ishimaru. „Die Kontrollen werden immer strenger. Manche müssen ihre journalistische Arbeit aus Sicherheitsgründen zeitweise aufgeben. Andere haben neue Mitarbeiter geworben, die ich gar nicht persönlich kenne.“


Offiziell ist Lee in Nordkorea ein einfacher Arbeiter. Seine Reisen an die chinesische Grenze erklärt er seinen Vorgesetzten damit, dass er dort zusätzlich Geld verdienen müsse. Dafür haben im Land des Hunger-Kommunismus auch viele Funktionäre Verständnis. „Ohne Schmiergeld läuft allerdings nichts“, berichtet Lee. Er braucht einen Passierschein, der es ihm erlaubt, einmal von seinem Wohnort bis kurz vor die Grenze und wieder zurück zu reisen – den gibt es gegen Bares.


In seinem früheren Leben hat Lee in einer Fabrik gearbeitet. Ende der 1990er-Jahre musste er mitansehen, wie sein Vater und seine Frau verhungerten. Er floh nach China, gemeinsam mit seinem Sohn und seiner Mutter. Mehrere Jahre lang lebte der heute 40-Jährige dort und verdiente auf dem Bau für nordkoreanische Verhältnisse gut.

 

2002 lernte er zufällig den japanischen Fernsehjournalisten Ishimaru kennen, der Flüchtlinge im Grenzgebiet interviewte. Stundenlang fragte Lee den Japaner über seinen Beruf aus und über die Bedeutung der Presse für den Reformprozess in Nordkorea. Dann kam Lee auf die Idee, das erste unabhängige nordkoreanische Medium zu gründen – mit sich selbst als Reporter.

 

Eigentlich hatte er mit seiner Heimat abgeschlossen, doch für „Rimjin-Gang“ kehrte er nach Nordkorea zurück. „Ich will der Funke sein, der den Wandel in Nordkorea initiiert“, erklärte Lee damals seinem Freund und Lehrer Ishimaru, bevor er über die Grenze schlich. Dann stellte er sich den Behörden und hoffte auf das Beste. Dank diverser Schmiergelder wurden die Ermittlungen gegen den Flüchtling nach wenigen Wochen eingestellt und Lee konnte – straffrei – ein neues Leben als Arbeiter und erster Undercover-Journalist Nordkoreas beginnen.

Ishimaru rekrutierte unterdessen weitere Reporter in China, von denen die meisten mit ihrer Ausrüstung und dem Spesengeld spurlos verschwanden. Doch ein paar wenige kehrten tatsächlich auf ähnliche Weise wie Lee heim und arbeiten seither im Geheimen an ihrer Mission. Viele haben nicht einmal ihre Familien eingeweiht – aus Angst, ihre Angehörigen könnten für ihr Wissen bestraft werden, falls ein Reporter auffliegt. Um seine Leute zu schützen, gibt auch Ishimaru weder Lees richtigen Namen noch weitere persönliche Informationen preis.

Das Recherchieren werde immer schwieriger, berichtet Lee. In den 1990er-Jahren, während der großen Hungerkrise, überquerten noch Tausende Menschen unbehelligt die Grenze zu China. Damals hat sich Redaktionsleiter Ishimaru sogar selbst einmal mit einem gefälschten nordkoreanischen Pass auf die andere Seite geschlichen. „Die Zeiten der Massenflucht sind vorbei“, sagt er. Selbst das illegale Telefonieren mit chinesischen Handys werde immer gefährlicher. Fast jeder Grenzposten hat ein Handy-Ortungsgerät. „Wenn ich mit unseren Reportern telefoniere, müssen die alle paar Minuten auflegen und den Standort wechseln“, erzählt Ishimaru.


Ohne Passierschein kann mittlerweile niemand mehr seinen Heimatort verlassen. Die Reporter filmen fast ausschließlich mit versteckten Kameras. Nur selten trauen sie sich, die Interviewten vorher um Erlaubnis zu fragen. Meist verwickeln die Journalisten Marktfrauen, Parteifunktionäre, Arbeiter und Soldaten in ein Gespräch und drücken heimlich auf die Record-Taste. Um herauszufinden, was die untere Parteiebene über die atomaren Avancen des Machthabers Kim Jong Il weiß, besuchte Lee einen lokalen Funktionär aus seinem Bekanntenkreis zu Hause, stellte eine Flasche Schnaps auf den Tisch und fragte nach dem jüngsten Atomtest. Das seien ganz besondere Waffen, schwadronierte der nach ein paar Gläsern. Die seien tief in der Erde eingegraben gewesen, und die Explosionen seien so stark gewesen, dass sie sogar unterirdisch durch den Pazifik geflogen seien.


Die „Rimjin-Gang“-Reporter sind nicht die einzigen Nordkoreaner, die heimlich Filmaufnahmen machen. Ishimaru weiß von Nichtregierungsorganisationen, die lokale Informanten mit Videokameras ausrüsten und zu Atomanlagen schicken. „Es gab schon einige Festnahmen“, erzählt er.

Wenn das Filmmaterial solche Staatsgeheimnisse enthält, droht ein Leben in einem der berüchtigten Gulags – wahrscheinlich ohne Wiederkehr. Das will Ishimaru nicht riskieren. Außerdem glaubt er nicht, dass solche Bilder den Informationswert haben, der diesen hohen Einsatz rechtfertigt. Werden seine Reporter beim Drehen von Alltagssituationen erwischt, drohen ihnen – so hofft zumindest das kleine Redaktionsteam – „nur“ ein paar Jahre Gefängnis.


Ishimaru macht seinen Leuten keine Vorgaben, was sie drehen sollen. Aber er erzählt bei ihren Treffen, was der Rest der Welt über Nordkorea weiß und was die Menschen in Japan, Amerika und Europa interessiert. „Sie sind die Reporter, ich unterstütze sie nur“, sagt er.

 

Er hat seinen Mitarbeitern einen Schnellkurs in journalistischen Arbeitsmethoden gegeben und ihnen auf überfüllten chinesischen Märkten gezeigt, wie man auch mit versteckten Kameras gute Bilder machen kann. Die Texte in Nordkorea zu schreiben ist zu gefährlich – wenn den Kontrolleuren ein Dokument in die Hände fällt, droht den Reportern ein Prozess wegen Spionage. Lee und seine Kollegen schreiben ihre Texte in China. Oder Ishimaru und sein Team aus chinesischen Helfern, nordkoreanischen Flüchtlingen und einem koreanischstämmigen japanischen Journalisten protokollieren die Erzählungen der Reporter. Gedruckt wird das Heft auf Japanisch und Koreanisch. Finanziert wird es vor allem durch den Verkauf des Videomaterials der Reporter an Fernsehsender.


Lee ist unbeschreiblich stolz auf jede neue Ausgabe von „Rimjin-Gang“, doch eigentlich träumt er von einem Magazin für Nordkoreaner. Ishimarus Team will ihm diesen Wunsch erfüllen. Zumindest an Kim Jong Il und alle nordkoreanischen Botschaften haben sie bislang jede Ausgabe geschickt. „Anfangs gab es keine Reaktion, jetzt schicken einige Botschaften die Briefe ungeöffnet zurück“, sagt Ishimaru und lacht. Irgendwann will er aber auch normale nordkoreanische Haushalte erreichen.


Über die Atomreaktoren, Kim Jong Ils Gesundheitszustand und die aktuellen Nachfolgegerüchte müssen sich auch die „Rimjin-Gang“-Macher bei ausländischen Medien informieren. „Wir wollen anhand des Alltagslebens zeigen, wie es um das Regime steht“, sagt Ishimaru. Sogar über Modetrends informiert das Magazin. Zurzeit sind lange, offen getragene Haare und Schuhe mit Plateauabsätzen der letzte Schrei auf Pjöngjangs Straßen, heißt es in der jüngsten Ausgabe.


Die Reporter haben aber auch über Monate hinweg im ganzen Land hungernde Straßenkinder und ausgemergelte junge Soldaten gefilmt – die Bevölkerungsgruppe, die eigentlich den größten Anteil der staatlichen Lebensmittelrationen bekommen soll. Mehr als ein Drittel der einfachen Soldaten seien unterernährt, berichtet ein Reporter. Ein anderer hat mit einer alten Frau gesprochen, deren Sohn in einem Militärkrankenhaus arbeitet. Die erzählte ihm, dass die Patienten dort nur ab und zu von ihren Offizieren ein paar Reste bekommen.

 

Immer wieder treffen die Reporter auf Soldaten, die auf Feldern arbeiten. Andererseits hat Lee von Marktverwaltern erfahren, dass hochrangige Offiziere ihnen regelmäßig Reis aus Militärbeständen verkaufen, um sich Bargeld zu verschaffen. Korruption im Militär sei mittlerweile Normalität. „Die Märkte sind voll, auch Lebensmittel gibt es dort genug. Aber die jungen Soldaten können sich nichts kaufen, weil sie schlicht kein Bargeld haben“, erklärt Ishimaru. „Das staatliche Verteilungssystem für Lebensmittel steht kurz vor dem Zusammenbruch.“


Doch statt Reformen einzuführen, setzt das Regime auf Härte. Die Behörden kürzen die Öffnungszeiten der Märkte, um das Handelsvolumen zu reduzieren. Sogar die maximal erlaubte Transportmenge für Lebensmittel wird ständig gesenkt. Eine Verkäuferin erzählte einem Reporter von Zugkontrolleuren, die alten Menschen Reissäcke abgenommen haben.

„Möglicherweise werden in drei bis fünf Jahren wichtige Pfeiler des Regimes von Kim Jong Il wegbrechen“, sagt Redaktionsleiter Ishimaru. Nordkorea steht am Scheideweg. Die Bevölkerung will Veränderung, das bestätigen alle Gespräche, die die „Rimjin-Gang“-Reporter führen. Ishimaru schließt einen Bürgerkrieg nicht aus, wenn das Regime komplett zusammenbricht. Nordkoreas Führer haben zwar kaum Nahrung für ihr Volk, dafür aber jede Menge Waffen. Im besten Fall werde die junge Generation der Arbeiterpartei das Ruder übernehmen, Reformen nach chinesischem Vorbild einführen, das Land öffnen und Kims Atomprogramm gegen internationale Wirtschaftshilfe eintauschen.

Die neue Generation internationaler Verhandlungspartner, allen voran US-Präsident Barack Obama, biete eine einmalige Chance für solch einen friedlichen Wandel, meint Ishimaru. Das „Rimjin-Gang“-Team will diese Chance nutzen, um den einfachen Nordkoreanern auch im Westen Gehör zu verschaffen. Anfang nächsten Jahres wollen sie die erste englische Ausgabe ihres Magazins herausbringen. Das japanische Außenministerium ist bereits Stammkunde. Und die Redaktion ist zuversichtlich, dass auch das Weiße Haus die Zeitschrift abonnieren w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