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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나치 프레임

박상봉 박사 2019. 4. 16. 10:56

동독의 나치 프레임

 

슈타지는 서독의 정치인을 분류해 적이라고 판단되는 정치인들에게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는 공작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중 하나가 이들에게 나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었다. 제거해야할 정치인의 개인적인 나치 연루설을 확산하는 식이었다. 물론 슈타지는 나치 문서를 염탐해 주로 기민련 소속 정치인들이 나치 정권과 연류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해 서류를 조작하고 증거를 위조하는 등 방법을 동원했다.

당시 대다수 기민련 정치인들이 혹시 나치 연루설에 엮이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슈타지는 이렇게 엮어낸 나치 프레임을 서독 언론에 흘리든지 아니면 동독 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서독 정치인을 압박했다.

출처: West-Arbeit des MfS, Hubertus Knabe, 1999.




 

I. 사례: 테오도르 오버랜더(Theodor Oberlaender):

1953~1960 아데나워 정부 전쟁피해자, 추방자 연방장관

1953~1961, 1963~1965 연방하원 의원

 

1) 시대적 상황, 분단 후 동독의 나치 프레임 공격으로 국내 정치 갈등

2) 나치 프레임 사례1 : 테오도르 오버랜더 법정공방과 장관 사임

- 혐의: 나치 시대 우크라이나 렘베르크 지역 대량학살 혐의

- 동독 최고법원, 1960.4.29.일 아데나워 내각의 테오도르 오버랜더 장관에 대한 궐석재판을 개최하고 종신축사노동형 선고

- 서독 본 법원, 동일한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혐의없음 무죄

3) 법원 판결 후, 아데나워 총리는 테오드로 오버랜더 장관을 경질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야당 사민당(SPD)는 자체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총리를 압박. 오버랜드 장관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1960.5.4.일 사임

4) 독일 사법당국의 철저한 나치 청산

- 1993년 통일 후 독일 검찰은 이미 91세 고령이 된 오버랜더를 다시 기소했지만 베를린 법원은 검찰의 재기소에 대해 위헌 판결 기각

- 슈타지 문서관리청에서도 오버랜더의 증인과 문서가 허위이고 위조되었다고 판단.

 

II. 사례: 전독성 장관 에른스트 레머(Enrst Lemmer, CDU)

 

동독 슈타지는 19589월 서독의 전독성(통일부에 해당)과 장관인 에른스트 레머에 대한 불신 공작 단행했지만, 다행히 공작으로 끝났다.

 

1) 공작의 내용: 슈타지는 1958.9.3.일 모든 부서에 서독의 전독성에 관련된 모든 정보 및 레머 장관의 나치 비밀정보국 게슈타포 및 다른 제국주의 정보국과의 연루와 같은 자료들을 수집하라고 지시.

2) 포츠담 슈타지 지부는 명령 6일 만에 베를린 본부에 다음과 같은 서류를 보내왔다. 내용은 포츠담 슈타지 지부가 관리하는 요원인 타마라 Tamara'의 부친이 1950년대 레머 장관과 스카트(Skat)라는 카드 게임을 즐겨했는데 레머 장관이 늘 자신을 무릎 위에 앉히고 게임을 했다는 서류였다. 하지만 이 서류는 포츠담 지부가 타마라와 조작해 낸 것이었다.

3) 또한 나치와 연루되었다는 위조서류를 조작해 이 사실을 서독의 언론에 알렸다.

 



 

III. 사례: 2대 대통령 하인리히 뤼프케(Heinrich Ruebke, CDU)

아데나워 내각에서 농림업 장관을 지내고 195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하인리히 뤼브케는 1964년 대통령에 재출마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가 파시즘 강제수용소 건설관리자였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동독 슈타지가 적으로 지목한 정치인의 신뢰와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조작이었다. 이 역시 슈타지의 공작으로 드러나며 뤼브케은 재선에 성공하고 1969년 대통령직을 완수했다.

 

IV. 독일의 나치 청산

 

1) 나치 청산은 서독의 정부 수립 후 철저하게 추진되었다. 심지어 통일된 후에도 연방하원은 의회주의 및 정당사 위원회를 설립해 과거 서독은 물론 동독 의원 및 대의원 2,600명에 대한 나치와의 연루 여부를 조사한 바 있다.

    (Der Spiegel 8/2016, p.25)

2) 1996년 독일 검찰은 이미 무혐의로 결론이 난 아데나워 내각의 오버랜더 장관을 나치연루 여부를 재수사한 바 있다. 당시 오버랜더 장관은 91세 였다.

   (Der Spiegel 18/1996,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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