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컬럼 및 논단

MB 정권의 통일인식 유감

박상봉 박사 2011. 2. 17. 14:41

MB 정권의 통일인식 유감


대통령의 통일 인식이 유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초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할 것을 주문했다. 이 말 대로라면 흡수통일은 평화적 통일이 아니다. 흡수통일이라는 개념은 독일통일과 함께 생겨났다. 일부 통일 반대론자들이 흡수(Absoption)이라는 단어를 택해 마치 서독이 불쌍한 동독을 흡수해 제멋대로 난도질하고 있다는 비난이었다. 하지만 독일통일을 규정하는 개념은 ‘편입’(Beitritt)이다. 독일은 1990년 8월 23일 동독의 인민회의의 ‘편입’ 결정에 따라 통일을 이루었다. 이렇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편입을 통한 통일을 흡수통일이라며 비하했던 그룹은 극소수 좌파 언론과 구동독 지배자들이었다.

이런 왜곡된 흡수통일을 소위 전문가들이 20년이나 재탕, 삼탕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과거 정권에서는 공식적으로 ‘흡수통일 불가’를 선언하기도 했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이들의 반열에 섰다. 아니 대다수 국민들이 사이비 전문가들로 인해 동조자들이 되었다고 해야 옳다.

새해가 밝았다. 대북정책 전반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 작년의 북한 도발로 50명의 장병과 민간인 사망해서만이 아니다. 이런 왜곡된 통일인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3월의 천안함 사태와 11월의 연평도 도발에도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는 대북인식과 함께 통일인식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수 백 만 명을 굶겨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할아버지 권력을 손자가 물려 받아도 반대가 없는 나라가 어떻게 가능한지? 밖에 걸린 초상화가 비 맞는다고 생쇼를 하는 인민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이런 질문에 올바른 답을 찾으려 고민만 했어도 그렇듯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해답찾기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햇볕정책에 있다. 동족 북한에 따뜻한 햇볕을 쐰다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올 것이라는 유아적인 발상 때문이다. 햇볕정책은 이솝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이솝우화는 어린 아이를 위한 동화다. 길을 걷는 나그네와 북한 체제를 동일시 했다. 핵, 미사일을 개발하고 기쁨조에게 나체 춤을 명령하는 김정일을 소박한 나그네로 비유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세계 정세는 물론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의 ABC도 모르는 유아 같다고나 할까.

하루 아침에 전기와 물 공급을 끊고 베를린 봉쇄를 단행한 소련과 동독에 맞서 'Air Bridge 공중다리‘ 전략으로 대응해 위기의 베를린을 구했던 글레이 장군의 성숙한 지혜가 그립다. 공중다리로 총 28만 횟수의 비행이 이루어졌다. 거의 1년 동안 2분에 한 대꼴로 베를린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 결국 소련과 동독은 베를린 봉쇄 11달만에 봉쇄를 풀었다.

1963년 베를린 장벽이 생긴지 2년 만에 미국의 존 F. 케네디가 베를린을 찾았다.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은 세계적 명문이다.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연설은 통독 20년을 맞은 지금까지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다. “이 세상에는 자유세계와 공산세계 간의 가장 큰 이슈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베를린에 오게 합시다. 세상에는 공산주의가 미래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 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오게 합시다.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으로 데려 옵시다. 공산주의는 악마의 제도지만, 경제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 고 말하는 이들도 일부 있는 모양인데, 그들도 베를린으로 오게 합시다”. 자유란 어려운 것이고, 민주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높은 담을 쌓아 사람들을 가두고, 그들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적은 없었다.

천안함과 함께 햇볕정책도 수장되었다.

I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