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패러다임과 북한재건

동독 통신인프라

박상봉 박사 2017. 6. 12. 12:21

동독 통신인프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 통일이 실현됨에 따라 동독 지역에 대한 재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우프바우 오스트(Aufbau Ost)’라고 하는 동독재건계획이 마련됐고 분야별로 다양한 재건 사업들이 야심있게 추진됐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Telekom 2000 텔레콤 2000’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동독 통신망을 재건하는 사업으로 6년간 350억 마르크(20조원)을 투입해 초현대식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이 사업은 노후시설에 대한 현대화 작업과 통신 회선에 대한 증설 사업으로 분리 추진되었다.

통일 직후 서독은 사회주의 국가 중 가장 부유했던 동독의 통신수준이 얼마나 낙후했는지 놀랐다. 동독이 보유하고 있던 전화 회선이 총 180만선에 불과했고 그나마 이 중 70만대는 산업용과 행정당국의 업무용에 할당된 형편이었다. 서독의 전화 회선이 2,900만대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분단 시절 동독의 통신 사정의 정도를 가늠하게 된다.

사업장 전화도 서독의 경우 직장인 100명당 48대의 전화가 배당된 데 비해 동독은 19대에 불과했다. 또한 100가구당 전화대수도 서독의 경우 93대인데 비해 동독은 100가구당 16대 였다. 주택용 전화의 종류도 단회선 이외에도 2인 회선, 4인 회선, 10인 회선, 시간별 회선 등을 활용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토록 했다. 동전용 공중전화도 불과 1만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통신 활용도로 본 동독 주민들의 삶의 질은 매우 열악했다.

통신 기반 시설들도 대부분이 1920~3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로 기초적인 통신 수단용에 불과했다. 정보용 또는 경제 활동용으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했다. 그리고 동서독 간의 전화 통화는 국제전화로 취급되어 비싼 요금을 물어야 했고 동독의 혼란기에는 밀려드는 전화 수요로 통신상 혼란과 두절상태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열악한 통신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투자유치는 물론 동독 재건도 불가능했다. 정부의 프로젝트 텔레콤 2000’은 이런 긴박함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전화선을 증축하고 이동통신 및 인터넷 망을 구축하는 사업에 매진했으며 초기 2, 3년 동안은 신설 전화의 1/3을 기업체에 배당해 주는 등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통일 전 동독에는 개인이 사적으로 전화를 신청할 경우 전화가 가설될 때까지 20년이나 긴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통신 기반시설이 열악했으며 일반인들이 수동식으로 외부와의 전화를 사용할 경우에도 통화 연결을 위한 대기 시간이 3, 4시간이 되는 적도 다반사였다.

텔레콤 2000’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동독의 열악한 통신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초현대적 시설을 갖춘 통신망과 인터넷 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동독의 통화 음질이 서독보다 훨씬 좋다고 말한다. 과거 우리는 전화가 없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라고 자존심 반 부러움 반으로 굳이 전화의 필요성을 부인하던 동독인들이 이제는 최신의 통신 설비을 갖추고 서독 지역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 보다 질 좋은 통신 서비스를 향유하고 있다.


통일 후 우리는 허허벌판의 북한 땅을 최신기술과 설비를 동원해 재건해야한다. 서울의 지하철 9호선이 세계에서 가강 편리한 노선이 된 것은 가장 최근에 지어져 최신기술과 오랜 경험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IT, 나노, 바이오, 로봇기술 등 세계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재건해낼 북한은 지구촌에서 가장 활력있는 투자처가 될 것이며 경제 허브로서 동북아 지역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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